성곽을 찾아서

신라 칠중성의 배후 전초기지 파주,양주 감악산 보루군(坡州,楊州 紺岳山 堡壘群)('17.06.18토)

필그림2 2017. 6. 18. 18:39

신라 칠중성의 배후 전초기지 파주,양주 감악산 보루군(坡州,楊州 紺岳山 堡壘群)

- 삼국시대이래 한국전쟁을 지나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군사적 요새역할과 설인귀와 임꺽정 등 무수한 전설을 간직한 감악산 -



감악산[675m]은 파주시와 양주시, 연천군의 경계에 위치하며, 예로부터 경기오악(京畿五岳, 관악산,화악산,감악산,운악산,송악산)의 하나로 숭배되어 왔으며, 지리적 요인 때문에 삼국시대이래 군사적 요충지였다.

감악산 보루는 임꺽정봉과 감악산 정상 두곳에 있다. 산정상 아래 북쪽으로 임진강 주변과 파주시 적성면이 내려다 보이는데 임진강 유역의 신라시대 격전지였던 칠중성(七重城)이 있다. 감악산 정상의 보루는 둘레 약 200m이고 삼국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성벽이 동서남북으로 일부 남아있다. 정상에 군사시설과 등산로 개설로 인하여 많이 훼손되었다. 이곳에서 남쪽으로 300m 정도 떨어진 임꺽정봉 정상에도 보루성의 흔적이 남아있는데 축성 수법을 보면 통일신라 이후에 건립된 것으로 보여진다. 이 보루군은 칠중성을 방어하기 위하여 적에 대한 정찰과 감시 활동을 위한 전초기지 역할을 한 것으로 판단된다. 감악산 정상에는 진흥왕순수비로 추정되는 판독불가의 감악산 신라고비(설인귀 사적비, 파주시 향토유적 )가 있다.

임꺽정봉 보루는 전체 둘레는 116m이다. 정상부변으로 석축 흔적이 보이며, 특히 동쪽 망대로 추정되는 곳에는 약1m 높이의 축성 흔적이 잘 남아있다. 정상부에는 건물지로 추정되는 평탄지가 남아있고, 정상부 북쪽에는 폭 3m, 길이 4m, 깊이 1m 정도의 집수지 2개소가 확인되어진다.

한국전쟁 당시 중공군의 5차 공세가 펼쳐진 1951년 4월 22일에서 25일 3일간 적성면 마지리와 신산리 의정부를 거쳐 남하하는 주요 길목인 감악산 동쪽 설마리 계곡(일명 글로스터 고지)에서 영국군 29여단과 중공군 19병단의 치열한 혈전이 벌어진 곳으로 영국군 59명 전사, 530여명이 포로가 되어 겨우 69명만이 탈출에 성공하였다. 그러나 영국군 29여단의 전술적 실패에도 불구하고 글로스터 대대의 분전으로 중공군은 5차 공세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남진을 저지시켜 서울 사수선을 구축하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1957년 이곳에 영국군들의 선혈과 영혼을 기리기 위해 주변 돌들로 전적비(파주 영국군 설마리전투)를 세워 숭고한 희생과 넋을 기리고 있다. 이 전적비는 2008년 10월 11일 등록문화재 제407호로 지정되었다. 2016년 9월말 감악산 설마리 계곡을 연결한 150m의 산악 현수교인 "감악산 출렁다리"는 계속되는 인기로 감악산의 명물이 되었다. 감악산 정상 산행 목적이 아닌 이 출렁다리 하나만을 보기위하여 찾아오는 관광객들도 수없이 많다. 파주시는 영국군 글로스터 대대를 기념하기 위하여 부제로 "글로스터 영웅의 다리"라고 명명하였다. 2016년 1월 작고한 신영복 선생의 어깨동무체로 만들어진 "감악산 출렁다리" 글씨체가 반갑고 감악산에 참 잘 어울렸다. 이 "감악산 출렁다리"로 감악산에 대한 주도권을 파주시가 선점한 느낌이었다.



<참고자료>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양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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