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곽을 찾아서

가야의 옛터에 남겨진 천혜의 요새, 성주(星州) 가야산성(伽倻山城)('17.08.11금)

필그림2 2017. 8. 22. 09:20

가야의 옛터에 남겨진 천혜의 요새, 성주(星州) 가야산성(伽倻山城)

- 가야국의 전설이 가득한 비경의 산 가야산(1,143m)에 외적의 침입을 대비한 성곽의 흔적을 찾다 -



이 산성은 가야산의 동북쪽으로 낮아지면서 형성된 작은 골짜기를 감싸고 있다. 성 안에 용기사(龍起寺)가 있어서 일명 용기성(龍起城)이라고도 한다.

『경상도지리지』에는 6개의 골짜기를 가진 둘레 2,730보의 포곡식(包谷式) 산성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언제 축조했고 어떤 구실을 했는지는 기록이 없다.

성 안의 넓이가 182결 이상이나 되며 많은 물을 얻을 수 있었으므로 주변의 백성들이 전쟁을 피하여 농성(籠城)하기에 알맞다는 점과, 산의 이름이 우두산(牛頭山)이라고도 하는 점으로 보아서 삼국시대에 축조되었던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한편, 임진왜란 때에는 승병장 유정(惟政)·신열(信悅) 등이 수축하였던 기록이 있다. 이 곳은 이웃한 독용산성(禿用山城)이 숙종 때 이후 중요한 요새지였기 때문에, 그뒤로는 입보(入保)의 구실을 다하고 퇴락하였다.


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이 산성은 가야산의 정상인 칠불봉의 동남쪽에 위치하며, 용기골의 좌·우로 상아덤과 제골산의 능선을 따라 축성된 포곡식 산성이다. 처음 축성한 연대에 대해서는 기록에 남아 있지 않아 확실하지 않다. 임진왜란 때에 이르러 체찰사 이원익이 조정의 명을 받아 승장 신열을 시켜 개축하였으며, 난중에는 인근 백성들의 피난처로 이용되었던 것으로 전하고 있다. 조선 숙종때 근처에 독용산성이 수축됨에 따라 그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퇴락하였다.

성벽의 전체 길이는 약 7.2km정도 되지만 대부분 무너졌으며, 일부 현존하고 있는 곳은 평균 높이가 1.5m정도 된다. 성안의 면적은 2.1㎢이다.

2000년에 실시한 지표조사에 따르면 성내에는 동·서·남·북의 성문을 위시하여 암문, 치성, 망루, 장대, 7개의 샘과 1개의 우물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성안에는 용기사지, 백운암지, 일요암지 등의 건물지가 남아있다


문화재청



경상북도 성주군과 경상남도 합천군 사이의 가야산에 있는 삼국시대의 산성.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백운리 산56-2

경상북도 기념물 제143호(2003.0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