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곽을 찾아서

속리산 일대 관방유적의 백미, 견훤산성(甄萱山城)(2012.05.21)

필그림2 2012. 5. 23. 15:49

속리산 일대 관방유적의 백미, 견훤산성(甄萱山城)(2012.05.21)

- 전쟁과 자연이 남긴 극한의 미(美), 그리고 병화가 없는 이상향 우복동(牛腹洞) -

 

 

경북 상주시와 문경시 일대에는 후백제 견훤(甄萱)에 대한 전설이 많이 남아있다.

견훤의 출생지라고 하는 문경시 가은읍 갈천리(옛 상주지역)를 비롯한 주변 지역에 견훤과 관련된 지명과 전설이 구전되고 있으며 "견훤"이라는 이름의 산성도 여럿 존재한다.

문경시 농암면 견훤산성, 상주시 화서면 하송리 견훤성(대궐터) 그리고 이곳 상주시 화북면 장암리 견훤산성, 그리고 강원도 원주시 문막에도 견훤산성이 있으며 전북 전주시 완산구의 남고산성이 견훤성으로도 불리운다.

 

<견훤산성의 위용>

<견훤산성 동쪽 망대지 아래 보축 성벽,2010.01>

 

화북 견훤산성은 상주시 화북면 소재지에서 속리산 문장대로 가는 입구인 장암리에 속리산이 동쪽으로 흘러내린 해발 541m 장바위산 정상에 쌓은 테뫼식산성이다.

견훤산성은 1996년 9월에서 1997년 2월까지 한국문화재보호재단 문화재조사연구단에서 지표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지표조사 결과 산성의 규모는 전체 717m, 높이 최고 15m, 폭 6m이고 치성 2개소, 현문 형태의 문지 2개소, 성등시설 3개소, 건물지 3개소, 우물지 2개소, 배수구 1개소가 확인되었다. 서고동저의 지형으로 체성벽은 대부분 내외협축이고 일부 구간은 자연 암반을 기저부 또는 측면부로 이용하여 성벽을 쌓아올렸다.

견훤산성 남쪽 화서에서 갈령(葛嶺)을 넘어 화북면소재지를 지나 괴산으로 통하는 늘재와 보은에서 속리산 문장대를 넘어오는 길을 관방하는 위치에 있다. 5세기 중반 고구려의 남진을 막기위하여 신라가 5세기 후반 6세기 초 이 지역을 방어하기 위하여 쌓은 산성으로 추측한다.

이 고장의 구전에 의하면 견훤이 이곳에 성을 쌓고 세력을 키워 근거지를 전주로 옮겼다고 하지만 견훤과 관련된 문헌과 흔적은 찾을 수는 없다.

 

<견훤산성 서문지-현문식 성문,2010.01>

<견훤산성의 극적인 미를 보여주는 서쪽 망대-일필휘지로 그려넣은 것 같은 속리산 고봉준령들이 바라보인다 >

 

견훤산성은 이웃한 보은의 삼년산성과 비슷한 특징을 보여준다. 삼년산성에 비해 길이는 짧지만 정교하고 웅장한 축성은 삼년산성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특히 높은 암벽을 연결한 동쪽 치성의 웅장함과 견고함은 가히 성곽 건축의 예술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서쪽의 아스라한 낭떠러지와 암벽사이를 연결하여 만든 망대는 속리산의 거대한 준령과 고봉들을 파노라마 처럼 한눈에 담으며 주변을 감시할 수 있는 최적지이다. 이처럼 전쟁과 자연, 인공이 남긴 절정의 극한을 느낄 수 있는 옛 전장은 오늘날 속리산과 그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을 원없이 느낄 수 있는 멋스럽고 고졸한 성곽 유적으로 남았다.

동치성과 동쪽 성벽이 복원되어 옛스러운 맛을 잃어버리기도 했지만 검푸른 성돌의 이끼들과 함께 한쪽은 허물어지고 또 한쪽은 옛 그대로의 축성이 남아있는 풍경들은 더욱 사실적이고 멋스럽다.

 

<전쟁,자연,인공이 조화된 극치미, 견훤산성>

<서쪽 망대 암벽을 연결한 절묘한 축성,2010.01>

 

상주 속리산과 이곳 견훤산성을 이야기 할 때 나는 내 본관인 김해김씨 경파 파조 김목경(金牧卿) 어른에 얽힌 이야기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고려 충렬왕(1339년) 때 조적(曺頔)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운 김목경(金牧卿) 어른은 김녕군(金寧君)에 봉해졌다. 당시 혼란한 국정을 개탄하며 정당문학(政堂文學) 이조년(李兆年)과 함께 수차례 왕에게 상소했으나 듣지 않자 속리산으로 들어가 세상과 인연을 끊고 여생을 마쳤다고 한다. 이곳 견훤산성 동치성 암벽에 이분의 묘지명비가 음각되어 있어 나에게는 더욱 특별한 곳이다. 견훤산성 산아래 입구에는 근래에 기념비를 만들어 놓기도 했다.

 

<김해김씨 경파 파조 김목경 묘비>

<병화가 없는 민초들의 이상향, 우복동 화북면 전경>

 

견훤산성 인근 화북면 용유리에는 병화를 모르고 살 수 있다는 전설적인 이상향 우복동(牛腹洞)이 있다.

1500여년 전 삼국의 접경지인 이곳에 신라는 국토를 뺴앗기지 않으려고 엄청난 인력과 물자를 동원하여 견고한 산성을 축성하였다. 처절한 전쟁은 불가피하였을 것이다.

이러한 곳에 이상향 우복동이 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이곳이 가장 치열하고도 처절하게 지키고자 했던 땅이였어서가 아니였었을까?

견훤산성내 석양이 지는 옛 무덤 앞에 서서 발아래 펼쳐진 남쪽 넓은 들녘의 평온한 화북땅의 풍광을 바라보며 한국 성곽의 백미을 감상한 희열과 아픈 역사를 간직한 옛 전장의 비애, 그리고 그 안에 그것들을 극복하고자 이상향을 만들어낸 민초들의 아픔과 좌절, 희망을 두루 섞어 본다.

서서히 날은 저물어 적막만이 감도는 옛 성을 뒤로하고 나그네는 많은 배움을 안고 다시 현실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