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곽을 찾아서

아름다운 해안 풍경과 고즈넉한 성곽길의 거제 지세포성(2011.5.9)

필그림2 2011. 5. 12. 18:36

고즈넉한 성곽길에서 만난 아름다운 해안 풍경, 거제 지세포성(2011.5.9)

 

오래전부터 계획한 회사 팀원 워크아웃의 일환으로 2박3일 일정으로 울릉도를 가기로 했었다.

워크아웃기간 동안 120mm의 폭우가 예상된다는 기상청의 예보때문에 고심끝에 출항보다 귀항이 더 어려운 울릉도를 포기하고 급히 회의한 끝에 1박2일간의 일정으로

경남 거제와 통영으로 가볍게 다녀오기로 했다.

다행히도 내려가는 길은 흐리고 간간히 약간의 비가 내렸지만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중부내륙고속도로를 이용하여 함안 칠원분기점에서 남해고속도로를 갈아 타고 냉정분기점에서 서부산 방향으로 향해 가락IC에서 나와 작년(2010) 12월에 개통한 가거대교를 이용하여 거제시로 들어갔다.

운해로 남해안의 오밀조밀한 섬과 바다풍경은 희미했지만 거가휴게소에서 바라다 보이는 거가대교와 주변 풍경들은 눈과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었다.

꽤 유명하다는 거제포로수용소유적공원 앞 음식점에서 멍게비빔밥으로 늦은 점심을 해결하고 비록 약간 흐린 날씨이지만 해안도로를 이용하여 거제의 해안선을 따라 위치해 있는 명소와 유적지를 찾았다.

 

먼저 거제시내에서 대우조선소(대우해양조선)를 지나 남동쪽 일운면 지세포리에 위치한 지세포성(知世浦城)을 찾았다.

일운면 소재지를 지나 해안가쪽으로 계속 이동하여 지세포리 선창마을에 다다랐다. 지세포성은 작은 항구가 자리잡고있는 선창마을 뒤 계곡부에서 높지않은 산정상을 따라 축성되었다. 선창마을의 민가들이 서쪽 성벽을 담장삼아 옹기종기 모여있어 서문과 서쪽 성벽은 담장인지 성벽인지 분간하기 어렵지만 성 하단부의 거석을 이용한 축성흔적이 확인되어 담장이 아닌 성곽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세포성을 알리는 문화재안내판 앞에서 왼쪽으로 답사를 했다.

좁은 골목길과 민가의 작은 마당 앞을 지나 약간의 축성흔적을 따라 산 정상부로 향했다.

경작지와 축사 등이 눈에 보이고 좁은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니 사방이 훤히 바라보이고 산등성이를 따라 축성의 흔적이 보였다.

 

지세포성은 조선 성종 21(1490)에 수군만호진성(水軍萬戶鎭城)으로 처음 쌓았으며, 인종 원년(1545)에 왜구의 침입을 우려하여 영남 지역의 6개 군(郡)에서 25,000여 명의 인원을 동원하여 다시 쌓았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이곳 책임자였던 강지욱(姜志昱)이 왜장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싸우다 패하여 성이 함락되었다고 한다.

후 선조 37(1604)에 수군 만호진이 옥포의 조라포(助羅浦)로 옮겨가자 이 성은 폐허가 되었고, 효종 2(1651)에 만호진을 다시 이곳으로 옮겨오면서 그 모습을 되찾았다고 한다. 성은 지세포 동쪽 끝의 선창마을 뒷산 계곡으로부터 바다로 향해 쌓았다.. 하늘에서 본 성곽 모양은 동,서가 약간 긴 사각형이고 남벽과 북벽에 각각 2개소의 치성을 쌓아 방어를 용이하게 하였으며, 성의 동쪽 산정상부(동벽)에는 오른쪽을 출입구로 하는 옹성을 덧붙인 동문의 흔적이 잘 남아있으며 치성이 1개소가 확인 되었다. 이곳에서 넓은 제세포항과 반대편 해안이 잘 조망된다. 조선 순조2년(1908년)에 간행한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 "동쪽40리에 있는데 돌로 쌓았다. 둘레가 1천 6백 5척이고, 높이가 13척이다. 일본에 가는 자는 반드시 이곳에서 바람을 살펴보고 바다로 떠난다." 고 기록되어 있으며, 1872년 간행된 지방도에는 현재 성안 마을입구에서 부터 성내 관아와 다수의 부속건물과 민가가 그려져 있고 만의 안쪽에는 어민들이 제사를 지냈던 곳으로 전해지는 공수서(公水嶼)도 있다. 따라서 지리적,문헌적으로 보아 선창마을쪽 서문이 정문 역할을 했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지세포성 문화재 안내판에 성의 규모는  "둘레 330m, 높이 4m 정도였다고 하지만, 지금은 300m 정도의 성벽이 1.5m 높이로 남아 있다" 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거제시 성지 조사보고서>(동아대,1995) 에 따르면 둘레 735m, 높이 5m, 폭 4m 정도라고 기록하고 있다. 내가 봤을 때에도 대략 성 둘레는 1km가 안 될 것 같고, 잔존 높이는 1~5m까지 다양하게 남아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폭도 최대 4m 정도로 보여진다.

체성 외벽 하부에 앞면만 가공한 자연거석들을 이용하여 상부로 올라갈수록 작은 자연석을 이용한것으로 보았을 때 전형적인 조선전기의 읍성과 진보영성의 축성특징을

보여주고 있었다.  성 입구에 수군만호 비석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확인되지 않았다.

특히 성벽을 따라 돌면서 바라다 보이는 선창마을의 풍광과 항구 주변의 풍경은 너무나도 아름다워 진정한 거제도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었다.

산 정상부에서 마주보이는 만에는 대명리조트에서 콘도미니엄 건설이 한창이었다. 공사가 완공되어지면 조용한 이 어촌마을도 관광객으로 붐빌것이라 생각되어진다.

내가 조사한바로는 거제도에는 지리적 중요성으로 삼국시대(다대산성,둔덕기성) 이래로 조선시대까지 산성과 왜성을 포함하여 26개소의 성곽이 있고, 5개의 봉수대가 있다. 특히 가라산 봉수는 5개거로 중 하나로써 한양으로 올라가는 봉수의 시발점 중 하나이다.

지세포성은 비록 많이 허물어졌지만 옛 모습을 잘 남기고 있는 성곽유적으로서 향후 무분별한 복원으로 희생되지 말길 바라며, 또한 고즈넉한 성곽길을 따라 펼쳐져있는 일운면과 지세포 선창마을의 아름다운 풍경들이 잘 간직되길 바라는 마음을 간직한채 지세포성 답사를 마쳤다.

 

 

<지세포성/출처:다음 지도>

 

<1872년 지방도의 지세포성/출처:오솔길 블로그>

 

<선창마을과 접한 서쪽 성벽>

 

<지세포성 전경/서쪽에서 동쪽으로>

 

<북쪽 성벽>

 

 

<옹성구조의 동문>

   

<동쪽 성벽>

 

<동쪽성벽에서 남쪽으로 회절하는 부분의 추정 망대지>

 

<지세포성 정상부에서 보이는 일운면과 지세포 풍경>

 

<남쪽 성벽과 치성 흔적>

 

<서쪽 성벽/남쪽에서 북쪽으로>

 

<선창마을에서 지세포성 조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