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곽을 찾아서

문경새재 조령관문의 옛길을 걷다(2011.4.16~17)

필그림2 2011. 4. 22. 23:27

문경새재 조령관문의 옛길을 걷다-조령관(영남제3관)~조곡관(영남제2관)~조령관~조령산성 깃대봉~조령산성 마패봉(2011.4.16~17)

 

날씨가 너무 좋았다.

연초록빛 새 생명들과 검버섯 같은 활력잃은 적갈색의 고엽들이 공존하고 있는 4월 중순 주변 봄풍경.

가족과 단체들이 완연한 봄 정취를 느끼려고 주말을 이용하여 목적지를 향해 떠나는 토요일.

작년 이맘때 풍경들을 기억에 새겨 나도 가족들과 4월 연초록빛 봄날에 취해보고자 지난달 미리 예약한 조령산휴양림을 찾았다.

봄이 오는 변화의 풍경과 오감은 자연에서 확실히 느낄 수 있다.

가족들과 자연에 동화되어 천천히 옛길을 걷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분명 행복한 시간이다. 여기에 추가적으로 옛 선인들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유형적 산물이 그곳에 존재한다면 나에게는 더 없는 금상첨화다. 이런 조건들을 갖춘 가장 적절한 곳이 바로 조령관문이 있는 문경새재 옛길일 것이다.

작년 막 가을의 절정을 이루려던 찰나의 10월중순 경 문경 주흘관(主屹關)에서 시작한  문경새재 조령관문(聞慶關門) 걷기여행은 비록 미완이였지만 가을 햇빛에 반사되어 보석처럼 빛나는 노오란 추엽들과 알싸한 계곡물의 기억들이 나를 다시 이곳으로 찾아오게 했다.

작년 주흘관(主屹關, 嶺南第一關)에서 조곡관(鳥谷關, 嶺南第二關)까지 천천히 자연을 음미하며 걸었는데 이번에는 괴산 연풍의 조령관(鳥嶺關, 嶺南第三關)에서 조곡관까지 걷기로 했다. 통상적으로 문경새재라고 하는 조령관문 답사를 경북 문경땅에서 시작하는 것과 반대로 충북 괴산땅에서 시작하는 것은 분명 다른 느낌을 가질 수가 있다. 오후 2시경 조령산휴양림에 도착하여 숙소에 짐을 넣어두고 곧장 문경새재 조령관으로 향했다.

휴양림에서 조령관문까지의 산행길은  포장이 되어있어 옛길은 걷는다는 느낌은 별로 없었다. 조령관(조령산성)은 문경새재의 북쪽 방향을 지키기 위한 성으로 동쪽 마패봉(마역봉馬驛峰,922m)과 서쪽 깃대봉(844m) 사이 협곡에 축성하였다. 성곽은 조령관문 동,서쪽 마패봉과 깃대봉 아래까지 500여 미터씩 1~2m 높이로 앞면만 대충 가공한 돌로 허튼층쌓기 방법으로 축성하였는데 많이 허물어져 있지만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괴산땅에서 조령관문을 지나면 군사시설이 있었음직한 넓은 평지가 나오고 좌측으로 군막터가 있으며 성곽을 따라 마패봉과 부봉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있다. 우측으로는 산신각과 약수터가 있으며 깃대봉과 조령산,이화령으로 연결되는 등산로가 있다. 너른 평지를 지나 좌측 계곡으로 마사토를 깔아 잘 정비된 산책길이 있고 우측으로는 엣 문경새재길이 있다. 쉬엄쉬엄 맑은 공기를 마시며 주변을 둘러보면서 걷다보면 일제시대 송진을 채취한 애잔한 흔적이 있는 아름드리 소나무들과 이 길을 넘나들던 사람들이 비바람을 피했던 바위굴도 여러군데 지나고 1,2관문 사이에 설치된 조령원(鳥嶺院)과 같은 역할을 했던 동화원(桐華院)터와 임진왜란때 신립 장군의 군대 2진이 진을 쳤다는 이진터를 지나며 지난날 문경새재에 사람이 살았던 흔적인 귀틀집도 복원해 놓았다. 아이들과 함께 걷는 길이라 쉬엄쉬엄 놀면서 2시간만에 조곡관에 도착하였다. 조곡관에서 다시 오던 길로 돌아오면서 낙동강 3대 원류의 하나라고 하는 문경 초점을 지나 옛길을 걸었다. 조선시대때에는 대로였었을 이 길도 지금에 비하면 좁고 험한 산길에 불과하지만 수많은 사연을 갖고 이 길을 지나던 옛 선인들의 모습을 떠올리면 발에 체이는 돌부리하나도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책바위에는 문경 쪽 주흘관에서 올라와 무사히 새재길을 지나왔음을 기도했었을 것이고 괴산 쪽 조령관에서 올라온 사람은 무사히 새재길을 지나게 해달라고 기원했었을 것이다. 때로는 과거길에 오르던 선비들은 한양으로 가는 과거길의 무사함과 급제를 기원하기도 했었을 것이다. 옛길 중간중간에 설치해 놓은 새재 길손들의 싯구절을 음미하면서 18시경 조령관에 도착했다. 조령산휴양림으로 돌아와 가족과 즐겁고 맛있는 저녁을 먹고 소나무와 실록들의 향기를 맏으며 아득히 깊어가는 새재의 밤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6시 30분.

산새소리의 청명함과 알싸하고 상쾌한 새재의 공기는 나를 일찍 잠자리에서 일으켰고 어제의 산행이 조금 피곤했었던지 가족들은 여전히 잠자고 있는 사이 혼자 조령관으로 올라 깃대봉과 마패봉 아래를 잇고 있는 옛 성곽을 찾았다.

먼저 조령관문 정면 우측 깃대봉 방향으로 뻗은 성곽을 따라 올랐다. 작은 산신각을 옆으로 백두대간 조령산과 이화령 방향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면 조령관문에서 급하게 올라온 성곽을 마주한다. 높이 1~2m의 허튼층쌓기 방법으로 다소 조잡하게 쌓은듯 하다. 잡목과 등산객의 영향으로 허물어지고 퇴락했지만 부분적으로 옛 축성의 흔적을 잘 남기고 있는 부분도 있다. 능선을 따라 약 500m를 이리휘고 저리휘면서 깃대봉으로 오르는 급경사의 암벽아래에서 축성의 흔적은 끝난다. 혹시나하고 밧줄을 타고 암벽을 올랐지만 더 이상의 성벽은 보이지 않았다. 기왕에 오른거 깃대봉까지 올라 주변을 조망하였다. 차갑고 상쾌한 아침공기와 일출의 금빛 광선이 비추는 백두대간의 한 봉우리에서 아침을 맞이한다. 건너편 마패봉이 보이고 남서쪽으로 백두대간의 긴 준령들이 마치 누에고치처럼 펼쳐져보인다. 발아래에는 좁은 협곡의 새재가 아득하다.

다시 오던길로 조령관문으로 내려와 군막터 옆으로 잘 정비된 성벽을 따라 마패봉으로 연결된 성벽 위를 걸어 올랐다. 약 150m의 여장과 성벽이 잘 정비된 구간을 지나니 곧바로 옛 성벽이 보였다. 축성의 형태와 높이는 건너편 깃대봉 구간과 거의 유사하다. 성벽 안으로 가까이 민묘를 조성하여 그 축대와 경계석을 성돌을 빼 사용한 흔적도 보인다. 성곽 상부의 미석이 확인되는 구간도 있고 여장이 남아있는 구간에는 2~3군데 총안의 흔적도 보였다.  이쪽 구간도 500m 정도 축성흔적을 보이다가 마역봉으로 오르는 부분에서 성곽이 끊어진다. 마역봉을 지나 부봉방향으로 가는길에 부분적으로 성곽과 암문(북암문,동암문),수문 등의 축성 흔적이 관찰된다고 하지만 여건상 답사는 여기에서 마무리짓고 다시 돌아왔다. 나머지 구간을 다 확인할 수 없어서 아쉬웠지만 다음 백두대간길 산행을 계획하여 마역봉과 부봉을 연결하는 성곽도 확인하여야겠다. 아침 8시30분 휴양림으로 다시 돌아오니 가족들이 모두 일어나 있었다.

아침을 먹고 휴양림주변을 아이들과 산책하고 10시경 휴양림을 나와 오던길 인근에 있는 수옥폭포(漱玉瀑布)의 아름다운 풍광을 잠깐 구경하고 문경새재 옛길에 위치하여 오랜세월 통행자들에게 무사안녕과 신앙의 대상물이였었을 원풍리 마애여래불을 답사하였다. 특이하게 바위를 깍아내어 불상군을 조성하였는데 그 노력이 상당하였었음을 절로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파낸 바위가 지붕과 감실 역할을 하여 오랜세월 풍우에도 잘 보존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었다. 이 석불에 채색까지 했었다니 옛날 이 앞을 오가던 무수한 길손들은 한없는 경외심으로 절실한 기원을 했었을 것이다. 현재 충주와 연결된 넓직하고 육중한 국도가 새로 뚫려 마애불 앞 도로는 더욱 한적하다. 도로변에서조차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위치하여 찾아오는 이마저 별로 없지만 그 은은한 미소의 할아버지,할머니 석불은 길손을 따뜻하게 맞아 마음의 여유와 포근함을 안겨 주신다. 이렇게 편안하게 마무리한 괴산에서의 조령관문과 주변 유적지 답사를 마무리하고 다시 집으로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