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곽을 찾아서

자연과 인공의 비장한 건축미, 포천 보개산성(2010.11.24)

필그림2 2010. 11. 26. 11:29

자연과 인공의 비장한 건축미, 포천 보개산성(2010.11.24)

 

포천 보개산성(保架山城), 자연과 인공의 비장한 건축미에 압도되다.- 천여년전 전장에서 일촉즉발의 암울한 한반도 정세를 생각하며...

그리고, 드넓은 철원평야를 관측했던 전초기지 할미산성을 둘러보다.

(북한 연평도 포격사태의 심각성과 돌아가신 국군과 민간인을 애도합니다)

 

 

 

11월23일 오후 우려했던 남북 교전사태가 서해 연평도에서 발생했다. 북한군은 한국군 해상훈련을 빌미로 연평도로 무차별 포격을 가하는 사건을 일으켜 우리나라 국군(해병) 2명이 전사하고 민간인이 사상되는 있어서는 안될 국지전이 발생하여 주변국과 온 나라가 충격에 빠져 격노하면서도 슬픈 날이었다.

24일 산성답사를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사전에 약속한 일이라 다시 일정을 잡기도 힘들고 해서 그냥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이른아침 전철을 타고 약속장소로 가면서 출근하는 주변사람들을 보니 다들 차분하게 현업에 나가는것을 보고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약 2주만에 데일리안 최진연기자님과 성곽답사를 하게되는 기회였다. 막 군대를 보낸 아드님 걱정과 연평도 포격 사태에 대한 현실적인 얘기를 해가면서 우리가 가야할 목적지인 보개산성이 있는 포천을 향했다. 산성을 쌓으면서 희생되었을 많은 사람들과 다시 산성을 경계로 싸우며 죽어간 영혼들은 오늘날에도 수없이 발생하는  전쟁으로 희생되고 있는 군인과 민간인의 그러한 슬픔이였었을 것이라 생각하니 역사의 발전은 전쟁과 함께한다는 말이 아이러니 하면서도 더욱 가증스럽다.

 

저번 명성산성 답사때에  길잡이를 해주신 문화관광해설사님 두분(한웅,이정옥 선생님)을 포천시청에서 만나 보개산성으로 향했다.

20여년간 지명연구를 해오고 계시다는 한웅선생님은 포천을 손바닥 보듯이 훤하게 꿰뚫고 있었으며 이정옥 선생님은 포천문화관광해설사답게 포천의 여러 문화재와 명승지, 관광지, 맛집등을 많이 알려주셔서 이동중 차안에서 심심하고 지겹지 않게 해주셨으며 다음에 포천을 찾을 떄 많은 참고가 될 것 같았다.

37번 국도를 따라 관인면으로 향해 관인면소재지 못미처 중리저수지 방향으로 차를 돌려 중1리 마을을 지나 중리저수지를 왼쪽으로 끼고 지장산 매표소를 지나면 거친 시멘트 포장도로가 시작되는데 개울을 지나자마자 보개산성 안내판이 나오고 그위에 계곡을 막아 쌓아올린 약 4~5m 높이로 20여m 잘 남아있는 보개산성 성벽이 보였다. 자연석 앞면만 적당히 가공하여 허튼층쌓기로 축성하였는데 성돌이 큰것은 높이 50cm, 길이 1,5m 정도의 큰돌도 사용한 것을 보고 상당한시간에 걸쳐 공을 들여 축성한것으로 보여졌다.

서북방향으로 지장산(地藏峰, 877m)과 마주하고 있는 보개산성은 보개산 관인봉(717m)을 최고봉으로 하여 동고서저의 계곡 주변에 걸쳐 계곡과 계곡을 막고 경사가 급한 자연암벽을 이용하며 부분적으로 암벽위에도 성을 쌓은 4km의 큰 산성이다. 축성상태로 보아 전략적 기지로 쌓은 성은 아니지만 군사적,지리적으로 중요한 곳에 쌓은 통일신라 후기(후삼국시대) 또는 고려 초에 축성된 것으로 추측해볼 수 있다. 산성 서쪽방향 계곡을 따라 철원과 연결되는 옛길은 아직도 사용되어 지고 있다. 이 보개산성도 철원평야에 도읍을 정하여 18년간 이 지역을 통치한 궁예의 활동무대로 추측하기도 한다. 그래서 궁예산성이라는 이름도 있다.

산성 서쪽은 남북으로 형성된 지장계곡을 따라 관인산 정상방향에서 내려오는 계곡 사이사이마다 높고 견고하게 성을 쌓고 약간 경사가 급한 지대에는 성벽을 낮게 쌓아 자연지형을 잘 활용하였다. 중리저수지 위 지장계곡 입구에서 도로 우측으로 계곡사이사이로 축성의 흔적을 볼 수 있는데 3번째 지점에는 계곡물을 성벽 옆으로 돌려 평탄지를 만들어 온돌시설과 함께 군사가 사용했던 건물지 흔적도 보이고 남문으로 추정되는 성문도 잘 남아있었다. 이곳 계곡을 막은 성벽 아래로는 수구의 흔적도 완벽하게 남아있었다.

이 지점에서 정상부로 방향을 돌려 가파른 산등성이를 따라 축성하였는데 약간의 흔적들만 보이고 모두 허물어졌다.  산 중턱부터 경사가 완만해지고 암벽이 많아지는데 대부분 허물어졌지만 부분적으로 10~30m 씩 보존상태가 양호한 부분도 많았다. 특히 자연암벽을 깍아 성벽을 만들고 암벽 위, 바위와 바위사이에 아슬아슬하게 쌓은 성돌들은 자연미와 인공미가 혼합된 절정의 축성술이 산성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보여준다. 다행히 등산로가 발달되지 않은 곳이라 양호하게 남아있는 부분이 많았지만 무분별하게 등산로가 개설되면 이조차도 흔적을 남기기에는 어려울것으로 판단된다. 북쪽 성벽은 계곡 산등성이를 따라 정상부인 관인봉까지 연결된다. 성문으로 추정할 만한 부분도 관찰되고 성벽 바로 옆으로 건물터로 추정되는 흔적과 우물의 흔적도 관찰되었다. 산성 안쪽 계곡 부분에는 수천평 정도 될 만큼 넓고 비교적 완만한 지대가 있는데 군사주둔시설이 있지 않았을까 추측되기도 했다.

산성은 관인봉 정상에서 다시 남쪽으로 꺾여 산 정상부 능선을 타고 가다가 동문으로 추정되는 안부 지점을 지나  계곡을 우측으로 끼고 암벽이 심한 서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처음 보았던 계곡 성벽 부분으로 내려오는 형태이다.

정상 부분에서 주변을 관찰하면 동쪽에 고남산(古南山, 644m), 멀리 휴전선 방향 북쪽으로 금학산(金鶴山, 947m)이 자리잡고 있다. 우리가 오던 포천 방향으로 산성의 서쪽 계곡을 막은 중리저수지가 내려다보이고 저수지 건너편에는 종자산(種子山 642m)이 막아섰다. 지장산 넘어 서쪽에는 연천이며, 고남산 동쪽에는 운천이 있다. 전체적으로 보아 보개산성이 들어선 지역은 이 일대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중심부가 된다.(오솔길 블로그 참고)

산성답사는 관인봉 아래까지만 했다. 길이가 4km나 되고 초겨울 해는 빨리 저물기 때문에 아쉽지만 왔던 길로 다시 내려와야 했다.

산성을 오르면서 옛 성돌을 빼내어 만든  21세기 산성유물이라 할 수 있는 벙커와 참호, 교통호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천여년전의 전장이 오늘날 남북으로 가로막혀 대치중인 현실속에서 남겨진 흔적들은 여전히 이곳이 긴장가득한 전장이라는 것에 어떻게 말해야할지  가슴답답함이 밀려온다.

 

보개산성은 산성의 위치로 보아 철원으로 들어가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는 점, 이 지역이 역사적으로 국방상 중요했던 시기는 궁예 외에 별로 없었다는 점, 그리고 산성 내부에서 발견된 기와조각들의 추정 시기가 신라 말이라는 점 등을 감안하여 볼 때 궁예에 의해 축조됐을 가능성을 높여 준다고 한다.

‘삼국사기’와 ‘고려사’의 기록을 보면 ‘궁예는 왕건에게 쫓겨 산림(山林)에 들어가 암곡(巖谷)에 숨었다가 부양(斧壤·,현재의 평강)에서 살해되었다’ 고 한다.

따라서 보개산성과 인근 명성산성은 험준한 산과 바위,계곡 등으로 이루어진 산성으로 궁예가 왕건에게 대항했던 최후의 장소가 바로 이 두 산성 중 하나였을 것으로 비정되기도 한다. 

 

<보개산성 서쪽 성벽>

<계곡부를 막은 보개산성> 

<보개산성 옆으로 철원으오 향하는 옛길>

<보개산성 남문지>

<계곡을 따라 축성한 서쪽 성벽>

<자연암벽과 인공을 절묘하게 혼합한 북쪽 성벽>

<보개산성 내부 여장>

<축성술의 절정 - 바위위에 아슬아슬하게 성곽을 쌓았다>

 

                                                                                       < 보개산성 주변도> -오솔길 블로그에서-

 

돌아오는길에 포천지역 산성을 더 보고자 철원쪽으로 달려 포천군과 철원군 동송읍이 경계하고 있는 곳에 위치하는 냉정리의 할미산성을 답사하였다.(할미산 봉수라고 소개되기도 한다.)

전국적으로 할미산성이라는 동명의 산성이 꽤 남아있는데 대부분 마고할멈 전설과 연결되어진다.  

할미산성이 위치한 봉의산은 해발 백여m도 안돼 보이지만 철원벌판이 한눈에 펼쳐보이고 앞으로는 한탄강 협곡이 남북으로 흘러 자연 해자를 형성하여 비록 낮은 산에 위치한 300여 미터도 안되는 작은 산성(보루)이지만 오늘날 전방초소 또는 관측소와 같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축조연대를 알 수 있는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임꺽정의 전설이 있는 고석정(고석산성)이 가까이 위치해 있다. 산성이 위치한 정상부에는 군인들의 참호와 교통호로 사용되고 있어 거의 파괴되고 성벽의 기저부가 조금 관찰될 뿐이다.

 

<할미산성 전경, 남서방향에서>

 

철새들의 요란한 울음소리와 함께 가을걷이가 끝나 휑한 철원평야는 겨울을 알리는 그 스산함과 함께 그 옛날 용화세상의 꿈을 이루고자 했던 궁예의 미완의 슬픈 역사와 전설을 오버랩시킨다. 어둑해져가는 철원평야와 저멀리 금학산 너머에 있을 궁예도성을 바라보면서 오늘 답사를 마무리했다.

일행과 포천 일동에서 한웅선생님의 땅이름 관련 이야기를 들어가며 즐거운 저녁시간은 잊지 못할 것이다. 고마운 두분의 문화유산해설사님과 아쉬운 작별을 하고 서울로 다시 돌아왔다. 하루종일 메마르고 험한 산과 들을 헤메고 돌아오니 서울 한강변의 휘황찬란한 야경들이 어색해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