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곽을 찾아서

포천 명성산성의 흔적을 찾아서(2010.11.12)

필그림2 2010. 11. 13. 19:28

명성산성 ; 궁예, 패자의 역사와 전설 사이에서...

 

어제밤 막바지 가을을 알리는 비가 내려 오늘 아침은 너무나 맑았다.

며칠간 쌀쌀했던 날씨도 다행히 좋았고 늦가을의 맑고 상큼함을 느낄 수 있는 날이였다.

30여년간 한국의 성곽과 문화유산을 찾아다니고 있는 사진작가이자 데일리안 신문기자이신 최진연님 일행과 함께 처음 가보는 곳이자 꼭 가보고 싶던 포천지역 성곽답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아침 8시 20분 최진연 기자님 일행과 서울 수서역에서 만나 곧장 포천으로 향했다. 의정부에서 포천으로 가는 국도는 정체가 심해 포천으로 들어갈 때까지 꽤 시간이 많이 걸렸다. 포천에서 오늘 동행하여 명성산성을 안내해 주실 문화유산해설사 두분과 합류했다.

포천이라는 도시는 처음 온 곳인지라 이웃한 화천,철원지역에서 군 복무하던 시절 느낀 전방 군사도시의 한 곳 쯤으로 생각했었는데 꽤 번화한 경기도의 북부 도시였다.

 

명성산(鳴聲山, 923m)은 포천시내에서 더 올라가 철원군과 연결되며 산정호수로 유명한 영북면 산정리와 철원군 갈말읍 신철원리에 걸쳐있는 산으로 경기도에서 억새평원으로 유명한 곳이다. 후삼국시대 태봉국 궁예의 전설이 남아있는 명성산성은 한자 풀이에 따라 울음산성 또는 궁예산성이라 하기도 하며 억새평원 북쪽 명성산 정상에서 더 북쪽으로 궁예능선을 따라 깊은 계곡 좌우 능선에 자연 암벽과 깬돌을 이용하여 쌓은 약 2km의 산성이다. 우리는 11시20분경 신안고개 부근에서 암벽과 급경사가 어우러진 약 1시간 15분의 산행을 하여 궁예봉과 명성산 사이 안부에 도착하였다. 곧장 궁예능선을 따라 궁예봉 방향으로 산행했다. 능선 곳곳에서 만나는 군 벙커시설은 명성산성의 성돌을 가져와 다시 쌓은 것으로 보이며 곳곳에 고려말 조선초에 유행한 어골문 기와파편과 적갈색, 흑색 기와편이 널려있다. 명성산 정상과 삼각봉(903m)이 펼쳐져 보이는 능선 암벽주변에서 점심을 먹으며 남쪽 멀리 궁예부인이 궁예에게 쓴소리를 많이하여 유배되었다는 국망봉(1168m)과 눈덮힌 가평 화악산(1468m) 군사시설이 아련히 눈에 들어왔으며 북동쪽으로는 금학산(947.3m)과 그너머로 궁예도성이 위치하고 있다고 한다. 동쪽으로는 멀리 내가 군복무한 대성산(1175m)도 보인다.

궁예봉이 내려다 보이는 암벽 주변으로 경사가 완만한 지형이 나타나는데 암벽옆으로 성벽의 축성 흔적이 남아있었다. 높이는 1m정도이고 거칠게 다듬은 돌들을 이용하였다. 그 아래 회절부의 축성흔적과 궁예봉 아래까지 연결되는 흔적을 볼 수 있었다. 궁예봉 아래까지 s자형으로 휘어진 축성흔적은 약 70여m로 계곡방향으로 서문의 흔적이 남아있다. 궁예봉에서 축성의 필요성이 없는 천혜의 암벽으로 형성되어 계곡을 끼고 다시 북동쪽 능선으로 산성이 이어져 북쪽 계곡 입구에 북문을 설치하고 다시 동남쪽 계곡 능선을 따라 산성이 이어져 궁에능선과 연결된다. 궁예봉 근처 궁예바위에는 궁예가 망국을 슬퍼하며 울었다는 희한하게도 딱 사람 한명이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있고 그아래 멀리 은빛 산정호수가와 주변의 산맥이 펼쳐져 보였다. 북문 주변과 동남쪽 계곡 능선 주변에도 축성의 흔적이 남아있다고 하는데 시간이 안돼 아쉽게도 답사를 하지 못하고 서문아래 3단으로 만들어진 건물지를 둘러보고 명성산성의 답사를 마무리했다.

 

 <명성산성 전경>

 <궁예능선의 가파른 자연 암벽을 이용한 서쪽 성벽>

 <명성산성 서쪽 능선에서 발견되는 조선시대 흑갈색 기와편>

 <북서쪽 회절부 축성 흔적>

 <추정 서문지>

 

<서문지 부근 성벽1>

 <서문지 부근 성벽2>

<성내 계곡부 건물지 흔적 - 북쪽 철원평야를 바라본다>

 

명성산성과 명성산 일대에 전해오는 궁예와 관련된  전설이 역사적인 뒷바침을 할 수 있는 흔적을 찾을 수는 없었지만 이 포천과 철원일대에는 태봉국과 궁예와 관련된 유적들이 아직 상당히 남아있다. 그러나 궁예와 그가 만든 태봉국에 대한 역사를 밝히기에는 아직 많은 숙제를 안고 있어보인다.

다음에는 태봉국과 관련이 깊은 철원의 궁예도성과 포천 관인면의 보개산성은 꼭 한번 답사하고 싶다.

 

서문아래 계곡을 따라 내려왔는데 원래 등산로가 아니라서 낙엽에 빠지면서 꽤나 힘겹게 내려와야 했다. 산아래에서 올려다보이는 궁예봉과 시루봉은 가을 단풍과 함께 석양의 금빛 물이 들어 기이한 사람 얼굴 형상을 보였다. 오후 5시경 산행을 마치고 춸원군 갈말읍으로 이동해서 이곳에서 바라보이는  명성산을 감상하며 명성산성 답사일정을 마치고 함께한 일행들과 포천에서 유명하다는 순두부 식당에서 저녁과 함께 이동 막걸리를 반주로 오늘 답사와 서로의 얘기를 나누어가며 아쉬움을 달랬다. 포천 문화유산해설사들과 헤어지고 돌아오는 차안에서 최진연기자님과 데일리안 경기 본부장님과 대화를 나누다보니 어느덧 잠실역까지 와서 다음 답사때 함께 할 수 있는 날을 기약하며 작별하였다. 산본 집으로 돌아오니 밤11시가 훌쩍 넘었다.

 

 

<명성산 안내도>

 

<명성산>

일명 울음산이라고도 부르는 명성산은 철원평야의 동남단을 위압하는 해발 922.6m의 명산이다. 산세는 광주산맥에 속하며, 산형은 기암절벽으로 울창한데 특히 이곳 석질은 건축석재로 외국인들의 기호를 사고 있는 홍광석으로 산 전체를 형성하고 있어, 개발을 유혹하고 있으나 자연자원보존의 관점에서 보호관리에 역점을 두는 지역이다. 명성산 또는 울음산으로 부르게 된 데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한다.
“옛날 태봉국의 궁예가 철원 풍천원에 도읍을 정하고 통치하던 중 지나친 폭정으로 인심을 잃고 부하들에게 왕위를 빼앗기자 여기까지 피신해서 왕건과 대치하던 중 기력이 쇠퇴하여 부득이 이 산중에서 부하군사들과 해산을 하게 됐는데, 이때 심복들이 슬퍼 통곡하였다 하며, 그 후 가끔 이 산중에서 슬픈 울음소리가 들려 왔다한다.” 지금도 이 산중에는 궁예가 은거했던 성지 등 유적 일부가 남아있다. -철원군청-

 

 

<명성산성>

 갈말읍 신철원 1리에 소재되어있는 명성산성은 일명 '울음산성'이라고도 하는데 명성산의 능선을 따라 축조된 석성이다. 지금은 모두 붕괴되었으며, 시루봉에서 북서쪽으로 회절하는 첫 구간인 바위봉우리와 시루봉 사이에 약 30m에 해당하는 성벽이 남아 있다. 현재 남아있는 성벽의 높이는 1.2m 정도이다. 성의 축조시기에 대해서는 궁예와 관련된 전설이 있으나, 성터에서는 그 당시의 것으로 보이는 유물을 발견하지 못하였다. 다만 다수의 조선시대 기와편이 흩어져 있었다. 군사시설보호구역이다.

-국립문화재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