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곽을 찾아서

백두대간 지리산 서북능선에서 만난 산성, 고리봉보루와 정령치산성('19.05.26일)

필그림2 2019. 8. 20. 19:26

백두대간 지리산 서북능선에서 만난 산성, 고리봉보루와 정령치산성(鄭嶺峙山城)

- 남원 동쪽 산내에서 서쪽 운봉쪽 지리산 교통로를 방어하던 성곽 -



지리산 성삼재에서 고리봉,만복대,정령치를 지나 바래봉과 덕두봉 아래 구인월까지의 구간을 서북능선이라고 한다. 이곳은 백두대간과 겹치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 서북능선 길에는 고리봉보루(별칭 큰고리봉)와 정령치산성이 있어 옛 고개를 방어하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고리봉보루는 어떤 문헌자료에도 찾을 수 없지만, 정상 주변의 돌무더기와 수습되는 토기편이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작은 보루의 역할을 한 곳으로 추측한다.


정령치산성은 정령치차단성이라고도 하며, 전북 남원시 주천면 고기리와 산내면 덕동리를 경계짓는 지리산 정령치에서 고리봉에 이르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정령치산성이라고도 하는데 이 정령치에 성이 있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성은 아래에 있는 달궁의 궁터와 연결시켜 마한의 효왕이 별궁으로 지은 달궁의 궁터를 지키기 위하여 축성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 기록으로는 용성지(龍城誌)여지도서(輿地圖書)가 있다.
황령과 정령은 둘 다 지리산 기슭에 입지해 있으며 몹시 가파르고 험하여 소나 말이 다닐 수 없는 곳인데 거기서 서쪽으로 남원부까지는 50리쯤 된다. 옛 승려 청허당의 황령기(黃嶺記)에는 옛날 한() 소제(少帝) 즉위 3년에 마한의 임금이 진한의 난을 피하여 이곳에 와서 도성을 쌓았는데 그 때 황·정 두 장수로 하여금 그 일을 감독하고 고개를 지키게 하였는데, 황령은 황장이 지킨 곳이요 정령은 정장이 지킨 곳이다. 그 도성을 유지한 것이 71년이었다.……”하여 무너진 성과 허물어진 벽이 지금도 남아 있으며 그 도성이었다는 곳을 세상에서는 달궁터라 전한다.


두 고개 안에 있는 긴 골짜기는 과거에는 남원 땅이었으나 지금은 운봉에 속한다. 위의 글에 인용된 황령기(黃嶺記)의 저자는 서산대사의 이름으로, 휴정은 그의 법명이요 청허는 서산과 함께 호이다. 위의 황령기(黃嶺記)는 서산대사가 지리산에서 공부할 때 들은 달궁 전설을 글로 남긴 것임을 짐작할 수 있는데 다른 뚜렷한 증거가 없는 한 달궁 전설은 아직은 전설로 취급될 수밖에 없다.
지금의 관광 도로가 나기 전에는 산업도로였는데 이 때 길을 내면서 처리하기 어려운 흙과 돌을 쌓아 모아둔 대단히 큰 규모의 돌더미가 있었다. 거기에는 삼국시대 토기, 기와편을 많이 수습할 수 있었다고 한다.
성의 형태는 일렬의 차단형으로, 성벽은 대부분 무너져 있어 남아 있는 부분이 별로 없지만 정령치휴게소 뒷편 백두대간 길에서 작은고리봉 정상으로 오르는 등산로 바닥에 축성 흔적을 확인할 수 있으며, 또한 수직기둥홈의 흔적이 남아있는 성벽도 일부 남아있다. 성벽은 자연할석을 세로방향으로 뉘여 쌓았으며, 능선을 중심으로 서쪽사면에 내탁하여 축조하고 있다. 이러한 점으로 보아 전방위는 운봉고원에 해당하며, 달궁의 최전방선임을 가늠케 하고 있다.



<참고자료>

한국고고학 전문사전(성곽봉수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