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곽을 찾아서

신라가 개척한 하늘재에 만들어진 차단성, 한훤령산성(寒暄嶺山城)('18.10.21토)

필그림2 2018. 10. 29. 23:25

신라가 개척한 하늘재에 만들어진 차단성, 한훤령산성(寒暄嶺山城)

- 신라가 북진을 위해 개척한 하늘재에 남아있는 방어성곽 -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 156년 아달라이사금이 북진을 위해 하늘재(계립령,鷄立嶺 525m)를 개척했으며, 죽령 옛길보다 2년 앞서 열린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곳은 충청도 충주와 경상도 문경 사이의 고갯길 중 가장 낮다. 하늘재라는 명칭은 하늘에 닿을 듯이 높은 고개라 하여 붙여진 것이지만, 실제로는 고갯마루의 높이가 해발 525m로 그다지 높지 않고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다.

남한강 수계의 이 지역은 6세기 중반까지 신라의 북진 정책과 고구려의 남진정책이 첨예하게 대립했던 곳이다. 하늘재는 고려시대 이후 대원령이 훈과 음이 혼용되어 한원령→한월령→한월재→하늘재로 전음되어 불려온 것으로 보인다.

신라시대에는 계립령·마목현이라 불렸으며, 고려시대에 계립령 북쪽에 대원사가 창건되면서 절의 이름에서 따와 대원령이라고 하였다. 조선시대에 들어오면서 고개 부근에 한훤령 산성이 있으므로 한훤령이라고도 불렀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한원령으로 변화된 것으로 추측된다.


하늘재 북쪽에 있는 미륵대원지는 1976년 중원 미륵리 사지 발굴 조사 중 옛 미륵리 안말마을이 있던 자리에서 확인,조사된 사원 터로서, 대규모 건물지가 동·서·남·북으로 회랑처럼 길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미륵대원지는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나오는 "미륵대원(彌勒大院)"으로 추정된다.

미륵대원의 존폐 시기에 대해서는 분명하지 않으나 일연(一然)에 의하여 『삼국유사』가 저술되었던 고려 충렬왕대에 이르기까지 존속하고 있었던 듯하다. 『삼국유사』권1, 왕력(王曆) 1의 신라 아달라니사금(阿達羅尼叱今) 항목에, “계립령은 지금 미륵대원의 동령이다(鷄立嶺今彌勒大院東嶺是也)”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를 통하여 지속적으로 원(院)의 경영이 이루어졌던 사실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지리지에서는 대체로 대원령을 계립령으로도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나, 때로는 소리 나는 그대로 주관적으로 기록하여 19세기의 정혼(鄭混)은 진재집(進齋集) 한훤관방방략(寒喧關防方略)에 한훤령(寒喧嶺)으로 기록하기도 했다.


고려시대에 들어와 조령이 주로 이용되면서 하늘재의 중요성이 약화되었으나, 조선 고종때 정혼()의 『진재집()』에 수록된 「한훤관방방략(寒喧關防方略)」에는 하늘재와 월악산 일대 전란의 기록과 방위에 대한 방략이 제기된 것을 보면 지속적으로 전략산 매우 중요하게 인식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한훤령산성이 위치한 곳은 충청북도 충주시 미륵리와 경상북도 문경시 관음리의 경계로, 소백산맥의 포암산(961m)과 부봉(925m) 사이의 안부(鞍部)에 하늘재를 막아 쌓은 행성(行城) 형태의 석성으로 둘레는 480m이다. 현재 부봉 쪽에는 성곽의 흔적을 확인할 수 없고, 포함산 등산로 계곡부에서 시작하여 하늘재를 따라 충북쪽으로 100~250m를 내려오면서 쌓아졌다. 남아 있는 성벽은 높이 1.1~3.7m, 상부 너비 1.8~2.4m 정도이다.

성벽 주변으로 신라계의 연질 및 경질 토기편이 발견된 것과 성벽이 북쪽을 방어하는 형태를 이루고 있어 신라에 의해 초축된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