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곽을 찾아서

삼국시대 문경과 단양,충주를 잇는 벌재(伐嶺)와 핏재(稷峙) 교통로상에 쌓은 성곽, 황장산(黃腸山) 작성(鵲城)('17.12.20수)

필그림2 2017. 12. 25. 20:04

삼국시대 문경과 단양,충주를 잇는 벌재(伐嶺)와 핏재(稷峙) 교통로상에 쌓은 성곽, 황장산(黃腸山) 작성(鵲城)

- 황장산 동쪽 문안골 깊숙히 계곡을 막아 쌓아 주 출입로인 성문이 고색창연히 남아있는 산성 -


경상북도 문경시 동로면 명전2리 산29-1일대로 단양군과 접경하는 명전2리 삼거리 남쪽의 황장산 남사면에 있는 문안골에 위치한다. 정밀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대략적인 위치와 잔존 현황 정도만이 파악되고 있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권17 예천군 관방조에는 “작성은 둘레가 610척이요, 높이가 11척이며 넓이가 10양척.”이라 하였으며,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에는 ‘황장산은 작성산’이라 예천군 산천조에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작성은 둘레가 610척이며 서쪽으로 돌문이 있으니 높이가 11척, 넓이가 12척이며 삼면이 모두 바위 돌이다.”라 기록되어 있다. 옛 『예천군지(醴泉郡誌)』에는 “작성산은 군에서 북쪽 75리에 있으며 황장금림(黃腸禁林)으로 봉(封)해졌으니 둘레가 40리다.”하였다. 『동국여지승람』나 『예천군지』에서는 모두 황장산으로 부르지 않고 ‘작성산’이라 기록하고 있다.
성문은 석문으로 너비 240㎝, 높이 227㎝이며, 산성의 축조방법은 엇갈려쌓기를 하는데 석문에 가까운 곳의 현존 높이는 370㎝ 정도이다. 고려 공민왕 때 축성된 것으로 길이 610척, 높이 11척이라고 전해져 오고 있지만, 축조방법 등의 특징에서 삼국시대 성으로 추정된다.(한국고고학 전문사전-성곽봉수편)

삼국전기인 156년 4월에 계립령로(鷄立嶺路:지릅재길)가 신라(新羅)에 의하여 개통됨으로써 문경지역은 남북교통의 가장 중요한 요충지가 된다. 그리고 신라의 한강 진출을 위한 전진기지로서의  역할과 백제, 고구려의 남진저지의 방어선으로서 역할도 겸하였다고 보여진다.
삼국전기에 소백산맥이라는 천연의 경계를 이용하여 서로가 영토를 확장하기 위하여는 필연적으로 경계지점에서 전투가 있다는 것은 상식적인 이야기이다. 특히 계립령로는 북방세력이 낙동강으로 진출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지름길이었기 때문에 계립령로의 장악을 위한 삼국간의 쟁탈전이 수 없이 되풀이 되었다고 추측된다.

계립령로는 신라세력의 북방진출을 위한 가장 중요한 길목이요, 문경지방은 백제와 고구려 등 북방세력의 남진을 저지하는 전략상·군사상의 요지가 되어 신라의 삼국통일 이전까지 6세기에 걸친 공방(攻防)이 계속 되었다.(문경문화원 향토사료 제7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