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곽을 찾아서

동해안 왜구방어 요새, 울산(蔚山) 유포석보(柳浦石堡)('17.10.03 화)

필그림2 2017. 10. 8. 21:43

동해안 왜구방어 요새, 울산(蔚山) 유포석보(柳浦石堡)

- 조선 경상좌도병영 소속의 해안방어 성곽 유적 -



조선시대의 보(堡)는 제진(諸鎭)의 보조적 방어시설로서 최전방에서 적의 동태 감시나 인근주민 대피, 유사시 전투를 하는 소규모 성으로서 중요한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보 주변에는 봉수가 설치되어 즉시 신호나 포성 같은 소리를 통하여 주변의 주민과 인근 지역 및 내지에 알리는 역할을 하였다.

유포석보(柳浦石堡)는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 의하면, 삼도 도체찰사 정분(鄭苯)의 건의로 왜구를 막기 위해 1450년(문종 즉위년)부터 처음 목책성(木柵城)으로 설치되었다. 1452년(문종 2) 정분이 다시 목책에서 석성으로 쌓도록 건의하였으며, 그 뒤 여러 번의 논의가 있었다. 1455년(세조 1) 축성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어 기존의 목책으로부터 5리 떨어져 있는 곳에 축성하기로 정하였으며, 1459년(세조 5)에 완공하였다고 한다. 이곳은 왜구 방어를 위한 군사 요충지였기 때문에, 경상좌병사(慶尙左兵使)의 지휘 아래 울산과 경주의 병사 3백 명이 3번 교대로 주둔하면서 수비했다.

이 보의 전체 둘레는 755m정도이며, 구릉 기슭의 낮은 평지와 계곡을 안으로 삼고 그 주위를 좁게 쌓았다. 현재 가장 잘 남아 있는 동문(東門) 근처 성벽의 높이는 220cm정도이다. 일제 강점기에 정자항의 방파제를 만들 때에 이 성의 큰 돌들을 뽑아 사용하였기 때문에 훼손이 되었으나 역사적·학술적인 보존가치가 높은 유적이다.


유포석보의 성곽 흔적이 남아있는 정자마을 뒤 야산은 정자항과 정자마을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조용하고 한적한 곳이다. 정자동은 90년대 후반까지 조용한 어촌마을이었지만 이후 울산 도심의 확장으로 아파트 개발과 관광산업의 발달로 나날이 변해가고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 육군소속의 해양방어 시설로서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뛰어난 유포석보는 문화재 안내 이정표 마저 없어 찾기가 쉽지 않았다. 비록 성곽 흔적이 많이 남아있지 않지만 마을의 유래와 관련한 향토사적 의미와 함께 더 나아가 많은 사람들에게 그 중요성을 인식시켜야할 중요한 국방유적이다.



울산광역시  기념물  제17호(1998년 10월 19일 지정)

울산광역시 북구 동해안로 1455-6 (정자동)


<참고자료>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