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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는 보수세력이 없고 수구냉전세력만 있다"(연합뉴스 2013.6.10)

필그림2 2013. 6. 29. 14:45

"한국에는 보수세력이 없고 수구냉전세력만 있다"

서중석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 고별 강연서 주장

 

 

서중석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

 

 

(서울=연합뉴스) 신창용 기자 = 국내 대표적인 현대사학자로 꼽히는 서중석(65)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의 목소리는 강연 후반으로 갈수록 짱짱하게 울려 퍼졌다.

 

서 교수는 올해 8월 정년 퇴임을 앞두고 10일 오후 성균관대 600주년 기념관 6층 첨단강의실에서 '한국현대사와 서중석'을 주제로 고별 강연을 했다. 서 교수는 강연 초반 사학, 그중에서도 한국현대사를 전공하게 된 배경과 한국현대사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을 구수한 입담으로 풀어놓았다.

 

웃음꽃이 넘치던 강의실 분위기는 서 교수의 강연이 한국현대사 왜곡 시도가 횡행하는 지금 이 시대에 대한 개탄에 이르자 팽팽한 긴장감에 휩싸였다.

 

서 교수는 "방송은 책임 있는 곳이 아닌가. 그런 곳에서 5.18 민주화운동 당시 북한군 특수부대가 광주에 침투해 전남도청을 점령했다고 보도했다. 인류가 달나라를 점령했다는 얘기보다 더 신기한 얘기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또 최근에는 한 신문사에서 현행 중학생용 역사 교과서가 남로당식 사관으로 쓰여 있으며 집필진의 90%가 좌파라는 식으로 큼지막한 기사를 내보내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인간의 목소리로 할 수 있는 말인지 아연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고 우리가 이런 시대에 살고 있다는 절망감을 느낀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서 교수는 이러한 한국현대사 왜곡이 해방 이후 40년 동안 극우 반공체제 속에서 안주했던 이들이 자유개방의 시대가 오면서 위기를 맞자 퇴행적 방법으로 극우 반공 이데올로기를 재연시키려는 시도라고 분석했다.

 

그는 "모든 걸 빨갱이로 몰아붙이면 다 되던 시대에 살던 사람들이 이번에도 일반 한국인들이 갖는 조건반사적인 무의식을 일깨우려고 영합한 측면이 있다"고 풀이했다.

 

서 교수는 이들보다 자신을 더 분노하게 하는 것은 바로 진보세력이라며 다시 한번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진보세력이라는 자들이 이런 논리에 대응 한번 제대로 했느냐. 1995년 이승만 살리기 운동이 대대적으로 일어나고 1945 8 15일을 '광복절'이 아닌 '건국절'로 개명해야 한다고 난리가 일어났을 때 진보세력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였느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이런 시도는 모든 역사 인식을 뒤집어놓는 것이다. 자유와 혁명의 역사, 이상과 희망의 역사를 뒤집어놓는 것인데도 진보적인 지식인들이 대항 한마디 못했다"고 꼬집었다.

 

서 교수는 이런 모든 것이 우리 현대사를 제대로 모르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지적했다.

 

"나는 진실과 사실이 교육되고 밝혀지면 한국 사회가 달라질 것이라는 낙관론을 갖고 있었다. 논문을 하나라도 더 쓴 이유가 그 때문이다. 그런데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보수세력이 한국에는 없다. 1980 6월 항쟁, 그 광채 나는 투쟁을 겪으면서 자유와 민주주의의 큰 대문을 열어놨으니 이제 이승만·박정희·신군부 정권에 붙어살던 자들이 반성하고 건강한 보수주의자로 태어나자고 생각할 줄 알았다."

 

그는 "이들이 1995년과 이명박 정권 초기인 2008년에 보여준 행태, 지금의 한국현대사 왜곡 시도를 보면 수구냉전 체제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그야말로 남북 간의 긴장이 훨훨 고조되던 시대로 돌아가자는 주장을 펴고 있다. 무서운 사람들이다. 반성이라는 게 없구나. 사실을 얘기해봐야 소용이 없구나 싶다"고 한탄했다.

 

하지만 서 교수는 암담한 현실에 절망하는 대신 후학들에게 기대를 걸었다.

 

그는 "현대사가 중요한 때가 왔다. 후배들이 잘 싸워주고 좋은 논문을 써달라. 건강한 우리 사회를 만들려면 근현대사학이 해야할 일은 너무나 크고 많다. 너무나 소중한 임무를 역사학자들이 담당하고 있다"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서 교수는 서울대 재학시절인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세 차례나 제적·복교를 거쳤으며, 1991년부터 23년 동안 교직에 몸담으면서 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한국현대사 1호 박사'인 그는 '한국현대민족운동연구'(1991), '조봉암과 1950년대'(1999), '신흥무관학교와 망명자들'(2001),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 현대사'(2005), '한국현대사60'(2007), '지배자의 국가, 민중의 나라'(2010), '6월 항쟁: 1987년 민중운동의 장엄한 파노라마'(2011) 등 많은 논저를 남겼다.

 

이날 고별 강연에는 조세열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 유홍준 명지대 교수, 원혜영 민주당 의원 등 민청학련 '동지'들과 지인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

 

강연 후에는 김효순(한겨레신문사정용욱(서울대정해구(성공회대지수걸(공주대) 등이 참여하는 좌담회가 열렸다.

 

<연합뉴스 2013/06/10 1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