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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이 집단주의로 흐르는 게 우려스럽다” 한겨레21(2013.6.17 제965호)

필그림2 2013. 6. 19. 17:08

“대학이 집단주의로 흐르는 게 우려스럽다” 한겨레21  [2013.06.17 965]

[초점] 명예교수 추대 배제된 정지창 전 영남대 교수, 파면 절차 진행 중인 임정철 영남이공대 교수 인터뷰 “영남학원 소속 대학이 신앙공동체처럼 돼버려”

대구=송호균 기자 uknow@hani.co.kr

사진 탁기형 기자 khtak@hani.co.kr

 

 

 

권력자의 의지는 신성불가침이다. 내부의 비판은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 이미 과거가 돼버린 한 시대의 기시감일까? 재단법인 영남학원 소속 영남대와 영남이공대는 최근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이유로 두 명의 학자를 학교 밖으로 내몰았다. 지난 2월 정년퇴임한 정지창 전 영남대 교수(독어독문과)와 임정철 영남이공대 교수(교수학습센터)가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영남대 재산 환수를 통한 재단정상화 시민대책위’에 활동에 참여했고, ‘박정희 시대’와 새마을운동을 미화하려는 지역 지식사회의 움직임을 통렬하게 비판해온 지식인들이다. 정 전 교수는 통상 학교가 퇴임한 교수에게 부여하던 명예교수 추대에서 배제됐다. 임 교수에 대해선 아예 파면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지난 65일 대구 시내에서 두 사람과 마주 앉았다. 초여름의 대구는 이미 폭염이었다.

 

 

“진심으로 뉘우친다면 재고하겠다”더라

 

정지창 전 교수에게 먼저 묻겠다. 평생 학자로서 지식인의 사회 참여와 실천을 강조해왔는데, 퇴임과 함께 정치적 논란의 중심에 선 심경이 남다를 수밖에 없겠다.
정지창 전 영남대 교수(이하 정) 서글프다. 평생을 바쳐 봉직한 학교인데, 애정이 없을 수 있겠나. 학교 당국도 당국이지만 더 중요한 게 학생들과의 관계다. 그 애정은 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마지막 예우를 거부당하니까 서운함을 넘어 황당한 지경이다.

 

퇴임 뒤 명예교수에서 배제되는 경우가 전에도 있었나. 실질적 혜택이 있는지도 궁금하다.
과거 사례가 없었던 건 아니다. 뺑소니 교통사고를 냈다든지 도덕적으로 특별한 문제가 있는 경우가 그랬다. 그 외에는 모든 교수가 관례적으로 퇴임 뒤 명예교수가 돼왔다. 명예교수라는 건 말 그대로 명예일 뿐이지 실질적인 부분이라고 해봐야 대학병원을 이용할 때 조금 혜택이 있다거나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 정도다. 대단한 것은 아닐 것이다. 정아무개라는 사람 하나가 명예교수가 되느냐 마느냐의 문제는 큰 사안은 아니다. 별로 연연해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대학 사회의 기류가 이렇게 집단주의로 흐르고 있다는 건 우려스럽다. 유신시대의 분위기가 이런 것이었다. 국민이 왜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느냐, 그런 국민은 감옥에 보내야 한다는 게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각 아닌가. 바로 이런 발상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임정철 영남이공대 교수(이하 임) 정 교수의 경우에는 학교 쪽 인사가 ‘진심으로 뉘우친다면 재고하겠다’고 했다더라. (일동 웃음)

 

 

임 교수에 대해선 아예 파면을 시도하고 있다. 영남이공대의 입장은 여전한가.
변한 건 없다. 다만 522~24일 사이에 징계위원회를 열겠다는 게 학교의 방침이었는데 아직 열리지 않고 있다. 학교 쪽의 징계사유서에는 지난해 영남학원(재단) 문제를 다룬 국회 토론회에 허가 없이 참석해 근무지를 이탈했다든가, 내부 게시판을 통해 총장과 학교 당국의 박정희 미화 시도를 비판했다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비판했던 부분은 총장실에 박 전 대통령 사진을 걸어둔 일이나 ‘박정희대학’으로 학교 이름 변경을 시도했던 일 등이다. 모두 사실이다. 반대 의견을 두고 자유롭게 토론하는 것이 대학이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이런 비판이 어떻게 해교 행위고 명예훼손인지 납득하기 어렵다. 영남이공대에선 대선을 앞둔 지난해 박 전 대통령의 사진을 학교 체육관에서 후문까지 죽 전시해놓기까지 했다. 박정희 장학금을 만들고, 새마을운동을 미화하는 수업도 개설했다. 교육자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 정치적 중립성이 아닌가. 나는 학교가 현직 대통령 또는 유력 대선주자의 정치적 성향을 맹목적으로 따라가는 건 잘못이라고 지적해왔을 뿐이다.
정권을 잡은 사람들은 자신이 진실을 독점할 권한을 가졌다고 착각하는 것 같다. 역사교과서를 왜곡하고, 광주를 왜곡하는 일이 그래서 벌어지고 있다. 새마을운동과 박정희 시대를 비판하면 내친다? 이게 학문의 공동체여야 할 대학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이들에게 박정희와 새마을운동은 하나의 종교에 가깝다. 대학이 신앙공동체처럼 돼버렸다. 그러니까 비판을 용인하지 못하는 거다. 지동설을 주장하면 이단으로 배척한 갈릴레오 시대에나 있을 법한 일이다. 물론 정권 차원에서 일련의 일들을 주도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정권을 잡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겠는가. 박 대통령은 부인하지만,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것 자체가 그와 영남대, 재단이 얼마나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는지 드러낸다.

 

교원 복무 교정에 ‘복종의 의무’ 명시

 

노석균 영남대 총장은 지역의 지식사회 내에서도 대표적인 친박 인사이자 박근혜 대통령의 영남대 복귀를 주도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상대적으로 이호성 영남이공대 총장은 주목을 덜 받았다. 그는 어떤 인물인가.
그가 대학생일 때는 박정희 반대운동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런데 영남이공대에서 총장으로서 보인 행보는 정말 상식에서 완전히 벗어난 수준이다. 평판도 대체적으로 비슷하다. 자신을 제외한 모든 이를 죄인으로 취급한다. 이호성 총장이 교원 복무 규정을 만들었는데 여기에는 ‘복종의 의무’가 명시돼 있다. 학교 구성원들은 총장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학내 문제를 외부에 발설해선 안 된다는 ‘비밀 엄수의 의무’도 있다.

대학이 아니라 마치 정보기관 같다.
근무시간 문제도 있다. 이번에 문제 삼고 있는 것 중의 하나는 근무시간에 근무지인 연구실을 이탈했다는 거다. 교수가 연구실에 있는 시간만 일하는 건가? 이걸 오전 9시부터 저녁 7시라고 못박아놨다. 그 시간에 외부 행사나 토론회 등에 참석하려면 외출 허가를 받아야 한다. 교수로서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원래 영남학원에 들어온 이상 설립 취지 등은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임시이사 체제에서 정이사 체제로 전환된, 박근혜 대통령이 이사들을 추천하며 사실상 이사회를 장악한 2009년의 과정 전후로 페어플레이가 아닌 반칙을 너무 많이 봤다. 그러면서 생각도 과격해졌고, 비판의 강도도 세졌다. 총장의 눈밖에 난 것도 그 때문일 거다.

 

파면이나 명예교수 배제 등의 조치 과정에서 대통령 측근인 최외출 영남대 교수(955호 표지이야기 ‘새마을운동 제사장 최외출의 초상’ 참조)도 관여했나.
추측의 영역이니까 단언할 순 없을 것이다. 최외출 교수 개인의 결정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의 재단 복귀 과정도 대다수 교직원, 동창회 임원들의 동의하에 이뤄졌고 노석균 총장이 앞장섰다. 다만 이런 부분은 있다. 박 대통령은 여전히 ‘나는 영남대와 무관하다’고 이야기하지만 7명 중 4명의 이사를 추천한 것 아닌가. 이게 문제가 되니까 이사회에서 추후 4명의 이사를 더 선임했다. 공격을 희석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 과정에선 최외출 교수를 포함한 (박근혜 대통령의) 참모들이 판단과 역할을 했을 것이다. 4명의 이사를 추천했지만 이사가 모두 11명이므로 과반수도 안 된다, 그러므로 나와는 무관하다는 식의 일종의 형식논리다. 박 대통령은 항상 형식논리를 내세워 자기방어를 하는데, 그래서 나는 그를 신뢰하지 않는다. 진실성이 없는 사람이라고 본다.

새마을운동이나 박정희 시대를 맹목적으로 찬양하는 일도, 그것을 비판하는 내부 구성원을 배척하는 일도 상식적으로는 잘 이해되지 않는 행태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결국은 돈 문제라고 본다. 이명박 정부의 상징이 4대강 사업이었다. 헛돈 20조원을 퍼부었다. 그러면 사람은 따른다. 떡고물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규모는 작지만, 새마을운동과 박정희 시대를 미화하는 데 각 지방자치단체가 많은 돈을 쓰고 있다. 2의 새마을운동으로 대한민국의 국운을 열겠다? 누가 동의하겠나. 그들은 새마을운동으로 영남대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이야기하지만, 본인도 속으론 확신하지 못할 거다. 그럼 왜 이런 일을 하는가. 그것을 빌미로 돈을 타낼 수 있기 때문이다.
부연하면 일단 나 같은 사람을 학교 밖으로 몰아내놓고 보자는 의도로 보인다. 시범케이스로 눌러놓으면 다른 사람들도 압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결국 원론으로 돌아가자는 이야기다. 영남학원 정상화가 생전에 이뤄질지는 모르겠지만, 대학이 정치세력에 종속돼서는 안 된다는 건 자명한 일 아닌가. 임 교수 파면 문제는 결국 그들 뜻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지 않나. 그조차도 제대로 못할 거다. 그러니까 징계위를 연다고 해놓고 미적대고 있는 게 아닌가. 결국 엄포용일 것이다. 단기적으로 보면 참 암울하다. 대선 이후 다들 허탈해하고 맥이 빠져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평생 그렇게 살아왔다. 이승만, 박정희와 수십 년의 군사독재를 겪었다. 그런데 큰 맥락에서 보니까 그래도 우리 사회는 발전해가더라. 그렇게 장기적으로 낙관하고 있다.

 

“나는 영남대를 사랑한다”

 

박 대통령이 퇴임 이후 재단 이사장으로 복귀하는 시나리오도 가능하지 않을까.
전혀 가능성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퇴임 뒤 박 대통령이 영남대에 와서 학교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남아 있을까. ? 정치적 영향력? 별로 없을 것이다. 많은 학교 구성원들이 ‘박근혜 모시기’에 앞장서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느 시기가 되면 그들은 또 등을 돌릴 것이다. 나는 영남대를 사랑한다. 영남대는 100, 200년 갈 대학이다. 대한민국은 더 오래갈 것이다. 이런 시대 역행적인 정권이 얼마나 가겠나. 5, 길어야 10? 그 정도 아니겠나. 게다가 옛날처럼은 못할 게 아닌가. 광주의 의미를 왜곡하고, 새마을운동이 어쩌고 하는데 그게 되겠나. 증언과 기록이 있고, 역사적 평가가 이뤄질 거다. 그것을 어떻게 조작해서 바꾸겠나.
결국 자신의 이익 때문에 박 대통령 밑에 모여든 주변인들이 보이는 과도한 충성심이 문제다. 최근 광주 왜곡 문제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5·18도 그렇고, 과거 일제시대나 한국전쟁도 그랬다. 아픈 시기를 너무 많이 겪고, 혹은 그 아픔을 목격하다보니 어느 한쪽에 속하지 않으면 위험해질 수 있다는 생각을 지역사회 전반이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대학은 누군가 정해준 이론만 교육하는 기관이 아니다. 학교에 이익이 된다면 반칙이라도 상관없다? 그건 잘못이라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