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곽을 찾아서

봉화 공민왕산성과 청량산성 그리고 오마도산성(2012.10.29)

필그림2 2012. 11. 1. 21:10

봉화 공민왕산성과 청량산성 그리고 오마도산성(2012.10.29)

- 수려한 자연경관과 공민왕의 전설을 간직한 봉화 청량산의 산성군 -

 

 

 

경북 북부 봉화군 명호면과 재산면 그리고 안동시 도산면, 예안면에 걸쳐있는 청량산(淸凉山)은 기암괴석과 수려한 자연경관이 어우러져 예로부터 소금강이라 불려질 만큼 많은 문사들이 찾아온 명산이다. 특히 퇴계(退溪) 이황(李滉)은 청량산을 자주 찾으며 독서와 풍광을 즐기고 예찬하였다. 경일봉 아래 청량정사(淸凉精舍)는 퇴계 이황이 공부하던 오산당(吾山堂)에 조선 순조 32년(1832)에 후학들이 창건하여 그의 정신과 학문을 기렸다.

해발 800m 내외의 암봉(장인봉, 선학봉, 자란봉, 자소봉, 탁필봉, 연적봉, 연화봉, 향로봉, 경일봉, 탁립봉, 금탑봉, 축융봉)과 12대(어풍대, 밀성대, 풍혈대, 학소대, 금강대, 원효대, 반야대, 만월대, 자비대, 청풍대, 송풍대, 의상대), 8굴(김생굴, 원효굴, 금강굴, 의상굴, 반야굴, 방장굴, 고운굴, 감생굴), 4우물(총명수, 청량약수, 감로수, 김생폭) 등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청량산의 자연경관은 2007년 국가지정문화재 명승23호로 지정되었다.

 

또한 고려 공민왕이 1361년(공민왕 10년) 제2차 홍건적의 난으로 개경이 함락되기에 이르자 복주(福州, 지금의 안동)로 몽진하기 전 이곳에서 머물며 산성을 축조하였다고 한다.

청량산의 산성은 봉우리 전체를 감싸고 있는데, 산성마을 입구에서 밀성대를 지나 축융봉(祝融峰,845m)과 여러 계곡, 봉우리을 거쳐 오마도봉(五馬道峰,853m)을 연결하고, 다시 산성마을 입구로 구축된 일명 공민왕산성(恭愍王山城)과 경일봉(擎日峰,860m)에서 뒷실고개 안부를 지나 선학봉(仙鶴峰,821m)으로 연결되고, 다시 뒷실고개 안부에서 청량사(淸凉寺)가 있는 계곡으로 축성한 청량산성(淸凉山城), 축융봉의 공민왕산성(축융봉산성)과 물티재(오마도터널)을 지나 경일봉(擎日峰,750m)의 청량산성을 이어주는 일명 오마대로(五馬大路)를 연결한 오마도산성(五馬道山城)으로 구분할 수 있다.

산성의 정확한 축성연대는 알 수 없으나 이 지역은 삼국시대에 고구려와 신라의 영토확장을 위한 격전장으로 낙동강의 수운과 남북 교통로의 요지에 위치한 것으로 볼 때 이 시기에 처음 산성을 축성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볼 수 있다.

 

 <축융봉 공민왕산성>

 

청량산의 산성에 관한 문헌기록은 조선 세종 7년(1425)에 편찬된 『경상도지리지(慶尙都地理誌)』건치연혁에 <淸凉山城 在安東任內才山縣 幷入禮安奉化 周廻二千二百七十九步 內廣一百五十結 泉井七 溪二> 즉 "청량산성은 안동 임내 재산현에 있고 예안과 봉화가 인접해 있으며, 둘레가 2,279보이며, 성내에는 150결과 우물 7개소, 계곡이 2곳이 있다"라고 하였으며, 조선 단종 2년(1454)에 간행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誌)』경상도 안동대도호부편에 <淸凉山石城 在才山縣西二十一里 距本府七十一里 周回二千二百七十九步 高險 內有井泉七 小溪二 又有君倉> 즉 "청량산석성은 재산현에서 서쪽으로 21리에 있고, 본부(안동)에서 71리 떨어져있다. 둘레가 2,279보이며, 높고 험하고 성내에는 우물 7개소와 작은 계곡이 2곳이 있으며, 군창이 있다"라고 하였다.

이는 산성의 길이가 대략 6,399m(포백척 환산)로서 축융봉과 오마도봉의 능선을 연결한 전체 둘레 약 6,500m의 포곡식산성인 공민왕산성 만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조선 예종1년(1469) 경상도지리지를 보완한 『경상도속찬지리지(慶尙道續撰地理誌)』와 중종 25년(1530)에 편찬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與地勝覽)』, 고종1년(1864) 김정호가 편찬한 『대동지지(大東地誌)』에는 "석축으로 둘레 1,350척으로 성내에 우룰 7개소, 계곡 2개소가 있으며 폐성되었다"라고 하여 성곽 둘레의 실제 길이와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볼 때 공민왕산성이 아닌 청량사 정상부의 청량산성이나 오마도산성의 일부를 인식한 것인지 공민왕산성내의 중성 부분만을 말한것인지 알 수 없다.

 

조선 선조 41년(1608)에 권기(權紀,,1546~1624)가 편찬한 경상도 안동의 읍지인 『영가지(永嘉誌)』의 기록에 선조 28년(1595) 임진왜란 때 체찰사(體察使) 이원익(李元翼,1547~1634)의 명으로 전 현감 이정회(李廷檜, 1547~1634)와 승장 행정(行靖)이 자소봉(紫宵峰)에 둘레 2,092척을 개축하였다고 한다.

청량산박물관 정민호 학예사에 따르면 이는 청량사 뒤쪽에 있는 청량산성에 대한 기록이라고 말했다.

 

한국보이스카우트연맹에서 간행한 『한국의 성곽과 봉수(1989)』에서는 공민왕성지 또는 청량산성이라고 하였으며, 둘레 3,752m, 높이 70~130㎝ 로  4곳의 성문지와 우물 7개, 개울 2개소라고 하여 성곽의 전체 길이에 차이를 보이지만 그외에는 옛 기록을 참고하였다.

<충북대 중원문화연구소>의 『봉화 청량산성Ⅰ동문지-밀성대 구간 시굴조사 보고서(2005)』와 『奉化 淸凉山城∥밀성대-축융봉 구간 발굴조사 보고서(2008)』에서도 "청량산의 성곽은 고려시대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하여 이곳에 머물렀다 하여 공민왕산성으로 불리우는 청량산성이 청량산의 주봉우리인 축융봉과 오마도봉의 능선으로 연결된 봉우리들을 따라 내부에 형성된 두개의 큰 계곡부를 감싸고 있는 포곡식 석축산성이다"라고 한 것으로 볼 떄 공민왕산성 즉 축융봉과 오마도봉 일대의 산성을 청량산의 유일한 산성유적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가장 최근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간행한 『한국고고학 전문사전 - 성곽 봉수편(2011)』에서는 봉화 북곡리산성으로 소개하였으나 <충북대 중원문화연구소>의 지표 및 발굴조사보고서 내용을 전적으로 인용하고 있다.

 

이처럼 고문헌과 현대 자료를 분석해보아도 이 청량산 주변 여러 봉우리를 감싸고 있는 세 산성에 대한 종합적이고 명확한 기록을 찾기가 어렵다.

청량산의 산성이 여러 봉우리에 걸쳐 복합적으로 축성되었다는 기록은 청량산성의 옛 기록과 최근 <충북대 중원문화연구소>의 지표 및 발굴조사 보고서에도 확인할 수 없으며, 다만 <청량산도립공원> 인터넷 홈페이지와 축융봉으로 오르는 구간의 산성(청량산성) 안내문에서 산성군에 대해 간략히 소개되어 있으며, 이번 조사에서 청량사 유리보전 뒤 계곡 등산로를 따라 허물어진 축성 흔적이 뒷실고개에 이르고, 경일봉(擎日峰,860m)에서 뒷실고개 안부를 지나 선학봉(仙鶴峰,821m)을 연결한 능선으로 축성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었기에 청량산의 산성군은 공민왕산성, 청량산성, 오마도산성으로 구분되는 복합적인 산성임을 알 수 있었다.

다만 공민왕산성, 청량산성, 오마도산성이 같은 시대에 축성되어 내성과 외성의 역할을 한 것인지, 시대를 달리하며 증,개축되었는지는 향후 전문가의 정밀한 조사가 필요할 것 같다.

 

축융봉과 오마도봉 사이 여러 계곡과 봉우리을 연결한 공민왕산성은 청량산성이라는 이름으로 봉화군과 충북대 중원문화재연구소에 의해 2003년 지표 및 1차 시굴조사가 이루어져 공민왕산성의 전체 둘레가 6,500m로 확인되었으며, 동벽,북벽,서벽,남벽,중벽의 체성 흔적이 조사되었다. 시굴조사 후 동문지에서 밀성대 구간 330m의 성벽정비가 이루어졌다. 2005년 12월부터 2006년 5월까지 진행된 2차 발굴조사에서는 밀성대에서 축융봉까지 북쪽 성벽의 1.7㎞가 조사되어 석축, 토축, 토석혼축, 자연지형 등 다양한 축조방법과 북문지, 용도시설 등이 확인되었다.

2006년에는 공민왕산성 동벽과 북벽 일부 구간이 2년여간의 보수공사을 거쳐 340m가 복원되기에 이르렀다.

공민왕산성 동문지 위 밀성대에서는 건너편 북쪽 청량산의 수려한 암봉들과 청량산성, 북동쪽의 오마도산성 그리고 명호면과 재산면을 동서로 연결하는 협곡과 남북으로 연결된 낙동강의 수운과 교통로가 잘 조망되어 이곳이 산성 입지의 최적 조건임을 잘 보여준다.

 

<공민왕산성 북쪽 토축성벽 원경 - 축융봉 정상에서 본 풍경>

 

청량산의 산성군은 고려 공민왕의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밀성대(密城臺)는 공민왕이 군율을 어긴 죄수를 처형했다고 하며 오마대로 또는 오마도로는 공민왕이 다섯 마리의 말이 끄는 수레를 타고 순시를 다녔다는 오마도(五馬道)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청량산 주변에도 공민왕에 대한 전설을 간직한 성곽유적들이 다양하게 분포하고 있다.

안동과 예천 학가산에 위치한 학가산성(鶴駕山城), 안동 성곡동과 용상동의 성황당토성(城隍堂土城), 안동시 남선면 신석리의 신석산성(申石山城),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의 왕모산성(王母山城) 서부리의 선성산성(宣城山城), 서후면 성곡리의 천등산성(天燈山城), 안동시 송천동과 임하면 천전리의 양장성(羊腸城), 일직면 송리의 송리산성(松里山城), 풍산읍의 풍악산성(豊岳山城), 울진군 온정면 온정리의 백암산성(白巖山城) 등이 있다. 

이 산성들의 상당수는 삼국시대에 초축하고 공민왕이 안동지역으로 몽진했을 때 재정비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공민왕산성내 산성마을에는 산신각과 함께 공민왕을 모신 작은 사당인 공민왕당이 있는데 공민왕이 이곳에 머울며 덕을 베푼 것을 잊지못하여 마을사람들이 사당을 짓고 매년 제를 올렸다고 한다. 현재의 공민왕당과 산신각은 2007년 3월 봉화군에서 복원한 것이다. 지금도 정월보름날과 7월 보름 백중날에 인근 주민들이 동제를 지낸다고 한다. 인근의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 내살미에는 공민왕의 어머니 명덕태후가 피신해 있었다는 왕모산성(王母山城)에 공민왕의 어머니를 모신 왕모당이라는 사당과 북곡리의 부인당, 가송리와 등자다리의 딸당(공주당) 등이 있다.

그외에도 안동시에는 예안면 신남리의 구티미,정자골, 도산면의 가송리·단천리·원천리, 풍천면의 하회리, 풍산읍 수동리, 용상동 등 9개 마을과 봉화군 명호면 북곡1리의 산성마을을 비롯한 아랫뒤실, 북곡2리의 윗뒤실, 고계1리의 고계,새터, 고계2리의 등자다리, 재산면 현동1리의 소용골, 현동3리 동다리 등 8개 마을이 공민왕을 마을신으로 모시고 있으며, 사위와 아들, 손자까지 신으로 모시고 있는 마을도 있다고 하니 전국적으로 공민왕에 얽힌 전설이 많이 남아있지만 청량산을 중심으로 한 봉화와 안동 일대에 공민왕 신앙과 전설이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으며, 이와 관련된 제의와 놀이 문화가 잘 전승되고 있다.

 

청량산 일대는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한 옛 선인들의 유유자적한 삶의 흔적, 그리고 비운의 개혁군주 공민왕에 얽힌 전설과 유적이 산재해 있는 역사와 전설의 보고로써 훌륭한 역사유적과 관광자원으로 잘 가꾸어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참고자료>

 『한국의 성곽과 봉수』  한국보이스카우트연맹  1989

『봉화 청량산성Ⅰ동문지-밀성대 구간 시굴조사 보고서』  「충북대 중원문화재연구원」  2005

奉化 淸凉山城∥밀성대-축융봉 구간 발굴조사 보고서』  「충북대 중원문화재연구원」  2008

『한국고고학 전문사전 - 성곽 봉수편』  「국립문화재연구소」  2011

『고려 공민왕과 임시수도 안동』  「안동시, 안동대 민속학 연구소」  2004

청량산도립공원 홈페이지(http://mt.bonghwa.go.kr)

 

<도움주신분>

청량산박물관 정민호 학예사

 

최종 작성일 : 2012. 11.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