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곽을 찾아서

청풍명월의 고장, 제천(堤川)의 수려한 자연과 함께한 성곽 답사(2015.05.10.일)

필그림2 2015. 5. 11. 22:38

청풍명월의 고장, 제천(堤川)의 수려한 자연과 함께한 성곽 답사

-수몰된 옛 청풍지역에 산재한 성곽유적과 최초 소개하는 가칭 학현리산성(鶴峴里山城)-

 

 

 

지난 4월초 제천 청풍호의 벚꽃이 하나 둘 꽃봉오리를 틔울 무렵, 홀로 청풍면 교리 방단적석유구를 둘러보고 내려오던 호젓한 산길에서 이곳 출신의 유세균(향토문화유산연구가) 선생을 만나 제천의 산과 문화유적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대화가 좀 더 깊어지면서 유세균 선생이 직접 조사하고 찍은 불교유적과 산성 사진을 볼 수 있었다. 그 중에서 아직 제천시와 학계에 보고되지 않은 산성 사진을 접했을 때 나는 더 진지해 졌고 꼭 한번 가고 싶다는 마음을 전했다. 서로 전화번호를 주고 받으며 한번 날을 정해서 함께 그 곳을 답사하기로 하였다.

유세균 선생은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남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서로 다른 지역에서 다른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시간을 맞추기가 여간 쉽지 않았다. 오늘이 바로 어렵게 약속한 제천지역 산성답사 날이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 영동고속도로와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남제천 IC로 빠져나와 오전 9시 정확히 약속 장소에 도착하였다. 유세균 선생과 한달만의 만남이였지만 그리 어색하지 않았다. 비슷한 취미가 이렇게 마음을 열고 편안하게 만날 수 있는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 읶다는 것을 실감했다. 오늘의 만남이 있기 전 미리 유세균 선생과 통화하며 성곽답사 일정을 조정하고 세부적인 것은 유 선생이 준비하였다.

 

먼저 금성면 성내리 충주댐 수몰지구 내에 위치한 청풍토성(성내리토성)을 답사하였다. 금성면소재지를 지나 드라이브하기 좋은 82번 국도 청풍호반길을 따라 성내리에 도착하니 작성산과 동산을 오르려는 등산객들로 붐볐다. 성내리 공용주차장에서 비포장길을 따라 충주호 수변으로 내려갔다. 호숫가에는 수몰 전 옛 마을의 민가 담장으로 보이는 일정한 간격의 돌무리 흔적이 보였고,  드넓은 주변에는 마치 몽골의 초원이 연상될 정도로 푸른 초지가 형성되어 있어 캠핑을 즐기는 사람들과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청풍토성은 충주호의 수위가 낮아질 때 토성 기저부의 석축이 드러나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성내리(城內里)라는 지명도 청풍토성이 있어 유래했음을 집작케 한다.

 

<청풍토성 북서쪽 성벽 기저부>

 

청풍토성(淸風土城, 또는 城內里土城)은 전체 둘레 약 450m의 방형 토성으로서, 문헌 기록이 남아있지 않고, 오랫동안 경작지로 이용되다가 1983년 충주댐 수몰지역에 대한 문화유적 발굴조사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발굴조사에서 청풍토성의 흔적은 지표 아래 30cm 깊이에서 확인 되었는데, 조선 후기에 창고와 농경지로 이용되면서 성벽과 내부 시설물이 심하게 훼손되었음이 밝혀졌다. 또한 성벽 내부에서는 2~3단의 석축 위에 토축한 흔적이 확인되었고, 외벽은 잡석들이 불규칙하게 쌓여있었던 것으로 보아 후대에 교란된 것으로 판단하였다. 청풍토성은 충주호 바로 앞으로 대덕산성을 비롯하여 주변으로 비봉산성,작성산성,저산성,견지산성,가은암산성,망월산성 등 고대 산성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며. 성내에서는 삼국시대 토기들이 다량 출토되었고 돌무지무덤으로 추정되는 적석들도 확인되었다.

청풍토성 답사를 마치고 다시 성내리공용주차장으로 돌아와 근처 봉황이 날아가는 것처럼 생겼다 하여 봉명암(鳳鳴岩)이라 각자된 신비스럽게 생긴 바위에서 유선생으로 부터 이 바위에 얽힌 전설을 들으며 잠시 쉬었다. 유선생은 성내리가 수몰되기 전에는 이곳이 상당히 높은 곳이라고 말해주었다. 청풍토성을 뒤로하고 청풍문화재단지와 마주하고 있는 청풍면 학현리(鶴峴里)에서 동산(東山, 896m)을 올라 유세균 선생이 최근에 발견한 산성(학현리산성)을 먼저 확인하고 견지산성을 답사하기로 했다.

 

<학현리산성 동쪽 성벽>

 

<학현리산성 용도 회절부>

 

청풍문화재단지로 가는 청풍대교를 건너지 않고 학현소야로를 따라 단양 매포방향으로 가다가 학현아름마을민박 주변에 주차를 하고 나무다리를 건너 동산을 향해 올랐다. 동산이라는 이름이 동네 작은 뒷산으로 착각할 수 있지만 해발 900m 가까운 높은 산이자 암벽과 주변 풍광이 빼어난 전국적으로 유명한 제천의 명산이다. 산행길은 처음에는 숲도 우거지고 산행길도 완만했지만 이내 그늘없는 암벽을 따라 가파르게 이어졌다. 무쏘바위(누운 남근석) 아래 등산로에서 맹독성의 까치살모사(칠점사)를 만나 유선생과 난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했지만, 무쏘바위(누운 남근석)에 올라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확트인 청풍호와 남쪽의 조가리봉,저승봉,미인봉, 더 멀리 금수산 등 여러 명승들이 눈앞으로 시원하게 펼쳐진 풍광은 산행의 즐거움을 제대로 느끼게 했다.

무쏘바위(누운 남근석)를 지나 성봉(城峰 , 804m)에 이르기 전 등산로 옆 자연 암벽과 깬돌을 대충 다듬어 쌓은 통일신라 후기(나말여초)로 추정되는 산성을 확인하였다. 이곳이 바로 유세균 선생이 발견한 학현리산성(鶴峴里山城)이다. 학현리 방향의 남쪽과 서쪽 청풍호 방향은 깎아지른 바위 절벽이고 동쪽과 교리 방향의 북쪽 능선과 동쪽 일부에 석축한 흔적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주변에서 유물을 확인할 수 없었기에 정확히 어느 시대에 쌓은 산성인지 단정할 수는 없었지만 주변의 삼국시대 산성과 단양 매포 방향과 통하는 갑오고개와 북쪽 작성산 사이의 금성면 성내리와 단양군 적성면 하원곡리로 넘어가는 새목재를 관방하는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산성의 전체 길이는 자연암벽 구간을 포함하여 대략 3km로 추정된다. 성산으로 향하는 동북쪽 성벽에는 고려시대 이후에 유행한 용도(甬道)의 흔적도 잘 남아있어 이 산성의 경영시기를 추측해 볼 수 있다. 학현리산성 용도를 지나 성봉을 넘어 중봉(中峰,892m)을 향해 산행하는 약 1km의 능선 길은 마치 성벽 위를 걷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바위가 널브러져 있었다.

 

<견지산성 북쪽 성벽>

 

견지산성(肩支山城, 또는 甄帝山城)은 중봉에서 동산으로 이어지는 완만한 등산로와 나란히 연결되어 있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무너진 석축들이 높지는 않지만 뚜렷하게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이 산성은 중봉과 동산을 동서로 연결하는 북쪽 능선과 이 능선에서 각각 남쪽으로 이어지는 가지능선과 이곳에서 연결되는 남쪽 계곡을 연결한 토축구간과 석축구간이 혼재하는 산성으로 추정된다. 앞서 조사한 학현리산성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으며, 북쪽의 금성면 성내리에서 단양군 적성면 하원곡리로 넘어가는 새목재와 남쪽의 청풍면 학현리에서 적성면 소야리를 잇는 갑오고개 중간 지점에 위치하고 있어견지산성 또한 이 두 고갯길을 관방하기 위하여 축조되었을 것이다. 또한 견지산성이 위치한 동산 북쪽 작성산(鵲城山, 848m) 정상 주변으로 작성산성(鵲城山城, 일명 까치산성)이 마주하고 있다. 작성산성은 구한말인 1908년 의병대장 이강년(李康秊)이 주둔하여 순국 전 최후로 전투를 벌인 곳으로 알려져 있다.

 

견지산성에 대한 기록은 조선중기까지 간행된 각종 지리지에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다가 조선후기에 간행된 『호서읍지湖西邑誌』에 처음으로 기록이 나타나고 있다. 『호서읍지湖西邑誌』의 「청풍부읍지淸風府邑誌」<성첩조城堞條>에 "견지성(肩支城)은 성고령(星皐令)에 있으며 토성의 형태가 남아있다" 라 하여 산성에 대한 간략한 기록만이 전하고있을 뿐 같은 책 <산천조山川條>와 <도로조道路條>에 성고령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산성의 정확한 위치는 알수 없다. 이후 일제강점기인 1910년에서 1937년에 걸쳐 이병연(李秉延)이 간행한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 「제천군堤川郡」 <고적조古蹟條>에서 금수산 북쪽 기슭에 있는 까치성(鵲城) 이외에 견제성에 대하여 "금수산(錦繡山)의 중록(中麓) 세봉우리 위에 있고 둘레가 약 15리 쯤 된다고 하며,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견제(甄帝)가 쌓은 금지성(金池城)이라 한다"고 하여 견제성 또는 금지성이라 불리는 산성의 위치와 대략적인 규모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이 견제성이 『호서읍지』에 나오는 견지성(肩支城)과 동일한 성터에 대한 기록인지는 현재로서는 알 수 없는 실정이다.  이후 조선총독부가 간행한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朝鮮寶物古蹟調査資料)』에 견지산성(肩支山城)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금수면 학현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견지산성이라 칭하며 산정과 계곡 상류를 둘러싸고 있으며 둘레는 약 1,000간으로, 대부분 천험을 이용하였으며 일부를 석축하였으나 대부분 붕괴되었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호서읍지』에 견지성이 위치하고 있다는 성고령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으나 산성의 명칭이 견지성으로 기록되어 있고, 토성의 형태가 남아있다라 한 것으로 볼 때 이 산성은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에 기록되어 있는 견지산성과 동일한 산성으로 추정된다.

 

견지산성은 세 방향이 능선으로 연결되어 있고, 남쪽 한 방향만이 계곡으로 이어지는 지형이다. 성내에는 넓은 평탄지가 있고, 식수가 확보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어 장기적으로 입보농성(立保籠城)이 가능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유세균 선생이 전해 들은 바에 의하면 예전 이곳에 화전민이 실제 거주하였었다고 한다. 주변을 조사한 결과 북쪽 능선과 동쪽 일부 능선에 붕괴된 낮은 석축 흔적 만을 확인 할 수 있었고, 유물로는 조선시대 이후로 추정되는 기와편 이외에 확인되지 않아 초축시기를 추정하기가 어려웠다. 다만, 인근의 학현리산성이 통일신라 후기(나말여초)에 축성된 것으로 판단 되어지므로 그와 비슷한 시기에 축성된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조선환여승람』에 금수산에는 산성이 작성과 견제산성 두곳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작성은 지금의 금성면 포전리 작성산에 위치하고 있는 작성산성이 분명하며, 견제성은 청풍면 학현리와 금성면 포전리 사이의 동산에 위치해 있는 견지산성이나 이번에 발견한 학현리산성을 기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동산과 연결되는 중봉 정상의 석축 흔적은 봉화대 또는 망대로 추측되고 이곳에서 산성은 남쪽으로 회절한다. 이곳에서 서쪽으로 청풍면 일대 충주호 주변으로 비봉산성(飛鳳山城) 대덕산성(大德山城), 그리고 청풍문화재단지에 위치하고 있는 망월산성(望月城)이 바라다 보이고 가까이 교리에 위치하고 있는 저산성(猪山城)도 확인된다. 이곳에서 산성은 남쪽으로 회절한다.

 

지금까지 학현리산성에 대한 간단한 현황과 작성산성(까치산성)과 견지산성(견제산성)에 대한 기록들을 정리해 보았다. 유세균 선생이 발견한 학현리산성이 위에서 정리한 옛 기록들 중 견지산성과 혼돈하여 기록하였거나 아니면 아예 기록에 없는 산성일 수도 있다. 견지산성과 학현리산성은 상당히 가까운 위치에 있고 주변 환경도 매우 흡사하다. 견지산성과 학현리산성의 축성 시기는 먼저 쌓은 산성의 보완을 위하여 약간의 차이를 두고 쌓았을 것으로 추측해 볼 수도 있다.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 제천과 청풍지역은 내토군(奈堤郡)과 사열이현(沙熱伊縣)이었다. 이 주변 지역은 남한강 수운을 통한 교통로를 확보하기 위해 치열한 싸움을 치르기도 하였다. 인근의 단양 적성과 온달산성, 그리고 충주의 충주산성(남산성), 장미산성 등은 그런 역사를 잘 말해주고 있다.

오늘 조사한 청풍토성,학현리산성,견지산성은 단순한 축조 형태나 빈약한 유물 흔적만으로는 삼국시대와 직접적인 관련성을 찾을 수 없었다. 청풍토성은 옛 청풍지역의 행정 중심지로서, 학현리산성과 견지산성은 주변 관찰이 용이하고 유사시 입보농성하기에 적합한 산성으로 확인하였음은 분명하다.

 

<학현리산성 북서쪽에서 바라본 청풍호>

 

오늘 조사한 성곽들은 웅장하고 멋스럽게 잘 남아있는 성곽은 아니지만 제천 청풍지역의 역사와 이 지역민들의 삶의 흔적을 보여주는 소중한 유산이다. 부족한 옛 기록 때문에 잘 알려지지도 않고, 관리의 소홀함에 무심히 사라져가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앞선다. 제천시와 중원문화재연구원에서 몇 년에 걸쳐 제천지역의 성곽에 대한 지표조사와 시굴조사를 하였으나 그 후속조치는 묘연하다. 다행히 한때 충청북도에서 "중부내륙 옛 산성군"에 대한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 등재 준비를 위한 활발한 연구와 조사가 이루지기도 하여 국립공원 월악산 내에 위치한 덕주산성은 유적조사와 적정한 복원이 제법 이루어졌다. 그러나 비봉산 모노레일 관광사업과 같이 관광객 유치에는 성공했지만 역사에 대한 무지함으로 정상에 남아있는 비봉산성의 흔적이 크게 퇴색해 버린 것은 큰 오점으로 남게 될 것이다. 눈앞의 경제적 이익에만 발맞춘 무분별한 개발보다 그 지역 역사와 문화유산의 보존이 더 큰 자산이 되는 시대가 머지않아 올 것이다. 자연환경과 문화유산의 보존, 그리고 개발이라는 산업화가 서로 조화를 이루어 많은 사람들이 다시찾고 발전하여 충북에서도 조금은 홀대받고 있는 이 지역이 조금이라도 더 풍요로워지길 바란다.

 

여기에 최초로 소개한 학현리산성은  제천의 산세와 인심을 닮은 유세균 선생의 제보와 안내가 없었더라면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또한 아름다운 제천의 명산 동산에서 잊지못할 산행과 맛난 음식들을 준비해주셔서 답사를 잘 마무리 할 수 있었다. 함께 할 다음 성곽답사를 기약하며 좋은 인연으로 오래 남길 바란다.

제천지역의 고졸한 성곽들을 안내해준 향토문화유산연구가 유세균 선생께 다시 한번 감사한 마음을 전해드린다. 그리고,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뵙길 바란다.

 

 

 

유적명 : 제천 청풍토성, 학현리산성, 견지산성

소재지 : 제천시 금성면, 청풍면 일원

문화재 지정 : 비지정

  

 

 

 <참고자료>

 

『충주댐 수몰지구 문화유적발굴조사종합보고서 - 청풍 토성지 발굴조사 보고』 「충북대박물관」 1984.

『제천의 옛 성터4 - 紺巖山城, 鵲城山城, 肩支山城』 「제천시, 중원문화재연구원」 2009.

堤川 黃石里山城,齊飛郞山城,大德山城Ⅰ地表調査 報告書』 「충북대 중원문화재연구소, 제천시」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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