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곽을 찾아서

역사 현장으로 다시 살아나고 있는 언양읍성(彦陽邑城)(2013.10.25)

필그림2 2013. 10. 29. 14:09

역사 현장으로 다시 살아나고 있는 언양읍성(彦陽邑城)

- 남문 영화루(映花樓) 복원 정비의 의미와 반성 -

 

 

 

2012년 4월 12일 울산발전연구원 문화재센터의 언양읍 동부리 227번지 언양읍성 남문지 일대 발굴조사 지도위원회에서 남문(映花樓)과 체성(體城), 옹성(甕城)의 범위와 구조, 문지의 형태와 구조, 증개축 상황, 해자(垓字) 등 언양읍성 남문지 주변에 대한 전체적인 현황 발표가 있었다.

이 발표에 따르면 2012년 1월 16일부터 진행된 언양읍성 남문지 일대 발굴조사에서 남문지는 여러 차례에 걸쳐 개축한 사실과 옹성의 완전한 형태와 구조, 해자의 위치와 성격 등이 확인되었다. 남문지 옹성은 반원형이고 잔존 높이가 2.8m, 너비 6m, 내부에 15×16m의 공간이 있으며, 동쪽으로 난 입구부분의 너비는 8.3m 로 밝혀졌다. 남문은 지상 2층의 정면 3칸, 측면 2칸의 개거식(開渠式) 문루를 시설하였을 것으로 추측했다.

성벽은 대체로 잡석으로 기초를 다진 후 지대석을 놓고 20㎝ 정도 물려서 기단석을 쌓고 있으며 기단석은 눕혀쌓거나 세워 쌓음으로서 뒤채움석이 서로 엇물릴 수 있도록 했다. 남쪽 성벽은 후대에 퇴축해 읍성 내부를 넗혀 쌓았을 것으로 파악했다. 또한 해자는 체성 외벽에서 9~9.6m 떨어져 조성했으며, 내부 측벽을 석재로 마감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처럼 언양읍성 남문(영화루) 복원사업을 위한 기초자료가 확보되어 2012년 말부터 남문과 남문지 주변 복원사업을 활발하게 진행하였으며, 총 사업비 74억원을 들여 언양읍성 남문(영화루) 복원을 완료하고 2013년 10월 2일 준공식이 이루어졌다.

복원된 남문은 지상 2층, 전면 3칸, 측면 2칸(78.93㎡) 규모의 개거식 성문으로 조선 초기 이익공(二翼工, 기둥머리 부분에 날개모양의 翼工 2개를 포개 놓은 형식) 양식의 겹처마 팔작지붕을 얹었으며, 초석은 자연석 위에 둥글게 다듬은 높은 주초를 세웠다.

체성과 옹성은 52.52m, 42.1m 길이로 각각 복원했다. 성문 앞에 반원형으로 쌓은 옹성 위에는 여장(女墻)도 설치했다.

 

<복원된 영화루 - 성안에서> 

 

언양읍성은 고려 공양왕 2년(1390)에 토성으로 처음 축성하여 조선 연산군 6년(1500)에 현감 이담룡(李聃龍)에 의해 석축으로 확장하고 임진왜란때 파괴되었던 것을 광해군 9년(1697)에 다시 쌓았다. 일제강점기인 1923년 언양 남천호안공사(南川護岸工事)때 언양읍성 성돌을 이용하였는데 이때 읍성 대부분이 훼손되었으며, 특히 호안공사와 거리상 가까운 남쪽 성벽이 가장 심하게 훼손되었다고 한다.

언양읍성 전체 둘레는 1,726m, 너비 6m, 잔존 최고 높이는 약 4.5m 이다.

평지에 정방형으로 만들어진 우리나라에서 드문 읍성 양식을 가지고 있으며, 축성의 특징은 임진왜란 전기 남해안 연안의 읍성과 진보(성)의 축성수법을 보여주고 있다.

 

1919년 편찬한 『彦陽邑誌』에는 동문을 망월루(望月樓), 서문을 애일루(愛日樓), 남문을 영화루(映花樓), 누각이 없던 북문을 계건문(啓乾門) 이라고 기록하였다. 또한 이 기록에 따르면 언양읍성의 정문에 해당하는 남문은 1800년대 초반 진남루(鎭南樓)에서 영화루(映花樓)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1900년 전후에 최종 소실된 것으로 추정된다.

 

<복원된 남문 옹성 위에서 바라 본 영화루>

 

<영화루 옹성 앞 남문거리 - 복원된 옹성이 콘크리트로 심하게 발라져 있다> 

 

문화재청의 언양읍성 종합정비계획에 따르면 이번 남문지 주변 복원 이후 동부리 일대 1만2,192㎡에 성곽 복원, 성내 시설 재현, 안내·편의시설 설치, 역사문화 체험장 조성 등을 단계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언양읍성 복원 사업은 언양 역사의 재정립과 지역 환경개선, 침체된 지역 경제의 활성화에 영향을 줄 것이다. 나아가 기존의 산업도시 울산의 이미지에서 벗어난 산업,경제는 물론 역사,문화,환경이 잘 어우러진 복합적 도시 이미지 재고에 있어서 의미있는 일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유적의 복원은 자칫하면 지역 역사와 지역민의 삶의 흔적, 지역 경제를 파괴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 이번 언양읍성 남문과 주변 성벽 복원사업에 막대한 국비와 시비가 쓰여졌다. 복원된 영화루 주변 성곽을 관심있게 살펴보면 실망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남쪽 성벽 밖 해자는 복원이 이루어지지 않아 지표면에 해자가 있었음을 알려주는 표식물만 만들어졌고, 성벽과 여장에는 전통적인 재료인 강회(剛灰)가 사용되지 않고 엄청난 양의 콘크리트(시멘트)가 사용되어 있었음은 매우 실망스러웠다. 이런 점에서 최근 속전속결로 이루어지는 문화재 복원이 안하느니 만 못하는 사업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게하기도 한다. 또한 문화재 복원들이 지자체 마다 경쟁적으로 이루어지다보니 각 지자체장들이 임기기간 내 이루어야할 업적 과시용 또는 성과에만 급급한 전시성 행정이라는 의구심 마저 들기도한다.

 

근래 들어 경북 청도읍성과 충남 홍성 홍주성 남문, 충남 당진 면천읍성 남문, 울산 경상좌도병영성, 전남 강진 전라병영성 등 유사한 읍성 복원사업이 전국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남한산성과 서울 한양도성의 복원을 통한 유네스코 세계유산등재 추진, 서울과 고양의 북한산성, 괴산 미륵산성 등 전국의 산성 또한 복원 사업이 완료되었거나 진행 중이다. 이러한 문화재 복원에 있어서 관련 학계와 해당 관공서는 철저한 준비와 계획을 통하여 심사숙고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또한 시민사회단체의 적극적인 감시와 함께 국민들은 제대로 된 역사의식을 갖고 문화재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광화문과 숭례문 복원 사업의 부실이 우리에게 아픈 상처와 함께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지 않은가.

부실하고 졸속적인 문화재 복원은 엄청난 세금 낭비와 문화재 보호가아닌 문화재 파괴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