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곽을 찾아서

안양시의 유일한 성곽유적, 영랑산성(永郞山城)(2012.06.29)

필그림2 2012. 6. 30. 16:38

안양시의 유일한 성곽유적, 영랑산성(永郞山城)(2012.06.29)

 

 

 

서울시와 경기도 과천시,안양시에 걸쳐있는 관악산(冠岳山, 해발 629m)이 서쪽으로 뻗어 여러 봉우리를 형성하고 있는 안양시 삼성산(三聖山, 해발 481m) 정상부 국기봉을 포함한 세 곳의 봉우리를 중심으로 많이 허물어져 축성 흔적이 희미한 영랑산성(永郞山城, 또는 永郞城, 三聖山城)이 존재한다.

영랑산성이 있는 삼성산은 행정구역상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으로 신라 때 원효(元曉),의상(義湘),윤필(潤筆)이 창건했다는 삼막사(三幕寺)가 있다. 삼성산이라는 이름도 여기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삼막사는 신라말 원효 등이 창건하고 통일신라 말 도선국사(道先國師)가 중건하였으며 고려말에 나옹화상(懶翁和尙)과 지공(指空)스님에 의해 크게 번성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무학대사(無學大師)가 풍수지리를 통해 수도 한양의 외곽에 4개소의 사찰을 세우는데 삼막사는 한양의 남쪽 지기를 누르는 역할로 활용되었다고 한다.

특히 천불전 뒷편 축대 위의 3층석탑은 고려 고종 19년(1232) 12월 16일 승장 김윤후가 몽고 장수 살리타이를 화살로 쏴 쓰러뜨린 기념으로 건립한 것이라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으며, 칠성각(七星閣) 옆 자연이 만든 남녀근석 한쌍은 아들을 얻기위한 치성의 장소로 알려졌으며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기숭배사상을 간직한 곳이다.

 

<삼막사 전경과 삼성산 정상부 영랑산성>

 

영랑산성의 문헌 기록은 조선 중종 25년(1530)에 간행한 <新增東國輿地勝覽> 광주목(廣州牧) 금천현(衿川縣) 고적조에 永郞城 石築在 三聖山 周三千七百五十尺 中有一池名大井  영랑성은 삼성산에 있는 석축성으로 둘레가 3,750척이고 대정이라는 유일한 못(우물)이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조선 영조(1757~1765)때 간행한 <輿地圖書>금천현 성지조에서도 『영랑성, 삼성산에 오래된 산성터가 있으며 언제 축성되었는지 알 수 없다. 둘레는 천칠백오십척이며 대정이라는 우물이 있다』라고 옛 기록을 그대로 인용하였고, <衿川縣圖>에는 삼성산의 삼막사와 망월암 사이에 영랑성의 위치가 표시되어 있다.

1908년 최남선이 지은 총 67절의 장편 기행체 창가(唱歌) <京釜鐵道歌> 8절에 『...관악산의 개인 경치 우러러 보고 영랑성의 묵은 터 바라보면서 잠시동안 시흥역 거쳐 가지고 날개 있어 나는 듯 안양 이르러...』 라고 영랑성을 기록하고 있어 그 당시에도 영랑성의 존재가 잘 알려져 있음을 말해준다. 현재에도 영랑산성에서 서쪽으로 경부선은 물론 KTX 광명역사가 잘 보인다.

 

<영랑산성은 삼성산 정상 세개의 봉우리를 감싸고 있다>

 

영랑산성이 있는 삼막산 정상에 이르는 산행길은 다양하다. 동쪽 관악산에서 오르는 길, 서쪽 석수동에서 삼막사로 올라 오른쪽 칠성각 방향에서 오르는  길, 남쪽 안양예술공원(구 안양유원지) 입구에서 바위 능선을 따라 오르는 길, 북쪽 서울 금천구 호암산성(虎巖山城)이 있는 호암산에서 남쪽으로 연결된 능선으로 오는 길이 대표적이다.

나는 안양사(安養寺)와 중초사지(中初寺地) 당간지주와 삼층석탑, 마애석종 등의 불교유적과 건축가 김중업(金重業)이 산업시설로는 유일하게 설계한 옛 유유산업 공장부지 등을 둘러보고 안양사 옆 바위 능선길을 따라 삼성산으로 올랐다. 주변 경치가 잘 조망되고 바위들이 아기자기해서 산행하는 즐거움이 있지만 군데군데 위험한 암벽을 지나야 했다. 산행을 하면서 최근 장기간의 가뭄으로 말라 타고 있는 여러 식물들을 보며 오늘 오후 늦게부터 장마가 예보되어 있다는 소식이 얼마나 기쁘고 반갑고 다행인지 모르겠다.

안양예술공원 입구에서 2시간 정도 산행한 끝에 삼막사 뒤 국기봉 정상부근에 도착했다.

 

 <영랑산성 남서쪽 성벽 흔적>

<영랑산성 남동쪽 회절부 체성 흔적>

<자연 암벽으로 이루어진 영랑산성 동쪽 성벽>

<정상 평탄지 부근에서  수습한 어골문 복합문양의 고려시대 기와편>

 

국기봉 아래 등산로와 암벽 아래로 널부러진 성돌 흔적이 보이기 시작했다.

정상 주변은 바위산으로 이루어져 자연암벽을 성벽으로 이용한 구간이 많다. 특히 동벽은 대부분 가파른 절벽과 암벽을 이용하여 축성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서쪽 성벽과 남서쪽 회절부 북쪽 성벽은 약간의 무너진 성돌 흔적과 암벽사이 체성 흔적을 확인할 수 있지만 축성 당시에도 견고하게 쌓은 것같지는 않고 전란 중 피난을 위하여 급하게 급조한 산성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성돌사이사이 기와조각을 끼워넣어 보강한 흔적들이 곳곳에서 보였다.

국기봉 정상 주변에서 북쪽 회절부까지 암벽으로 연결되는 동쪽 성벽은 대략 300m 이고, 남쪽과 북쪽 성벽은 지형적으로 거리가 약 100m로 짧고, 북동쪽과 북서쪽에는 성내 건물지가 있었음직한 평탄지가 있다.

전체 둘레는 약 1,000m, 성벽의 높이는 자연암벽을 포함하여 대략 5~6m 정도로 추측된다. 성내에는 상당수의 기와편이 확인되는데 대부분 어골문이 있는 흑회색 기와편으로 고려시대로 것으로 보여진다.

문헌 기록에 있는 <대정>이라는 우물 또는 저수시설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동쪽 주변에 용궁각(龍宮閣)이라는 무속신앙지가 있는 곳에 우물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해본다.

축조방식이 정밀하지 못하고 급조한 듯해보여 몽고가 침략했던 고려시대 후기 입보용 피난성으로 추정되어진다. 북쪽으로 7~8세기 통일신라 때 축성한 호암산성(虎巖山城)과 서쪽으로는 도시 개발로 인해 흔적 찾기가 어려워진 광명 도덕산보루(道德山堡壘)가 관찰된다.

 

 <영랑산성 북쪽 체성 흔적> 

<영랑산성 북쪽 암벽사이 체성 흔적>

 

영랑산성은 학계는 물론 안양시민들에게 조차 생소한 유적이다. 많은 서울시민과 안양시민이 관악산과 삼성산을 즐겨 산행하지만 삼성산 정상 등산로 주변에 흩어져있는 돌무더기의 실체를 알지못하고 있다. 등산객의 발에 차이거나 등산로 개설로 나뒹굴려져 겨우 흔적만이 남아있지만 현재 상태로나마 더 훼손되지 않도록 안양시 당국은 홍보와 관리에 신경을 써서 안양시 유일의 관방유적인 영랑산성을 보호해야 할 것이다.

 

 

집으로 돌아온 저녁 본격적인 장마를 알리는 비가 내렸다. 애타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비소식이라 무척이나 반갑고 고마웠다.

감나무 잎을 타고 굵게 흘러 방울방울 떨어져 땅바닥 저아래 작은 생명체까지에게도 감로수 같을 이 비가....

온세상을 흠뻑적셔 타들어가는 농작물과 산과 들 그리고 물속 생명들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주길바란다. 천지신명이시여! 제발 자연재해는 없게 해주시길...

 

              

참고자료〕

 

1.『안양시의 역사와 문화유적』 2001 단국대 매장문화재연구소 학술조사총서 제10책

2. 데일리안 2011년 11월 19일자 <최진연의 우리 터, 우리 혼> 안양 삼성산 영랑산성 방치하는 내막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