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곽을 찾아서

삼국시대 이래 남한강 여주 이포 지역을 관방한 파사성(婆娑城) (2012.2.19)

필그림2 2012. 2. 19. 23:15

삼국시대 이래 남한강 여주 이포(梨浦) 지역을 관방한 파사성(婆娑城) (2012.2.19)

 

   

 

<복원된 파사성 북쪽 성벽과 남한강 풍경>

 

 

여주 파사성은 몇 차례의 발굴조사를 통해 많은 사실들이 밝혀졌다. 남한강 중류에 위치하여 교통로의 요지라는 지리적 특성과 멀리까지 주변 일대의 시야를 확보할 수 있는 장점 등으로 일찍부터 주목된 산성이다. 산성은 신라 파사왕 2년 어떤 여장군이 쌓았다는 전설과 나당전쟁 때 당군과 신라군이 크게 전투를 벌인 매소성이라는 전설이 남아 있다. 기록에 따르면 임진왜란 당시 승려 의암(義巖) 도총섭(都摠攝)이 수축했다고 한다.

내외협축으로 쌓아올린 성벽의 둘레는 935.5m, 최고 높이 6.5m이다. 성벽은 부정형 할석의 한쪽 면을 맞추어 쌓아올린 후 빈 틈에 쐐기를 박은 서벽과 다듬은 장방형 석재를 ‘품(品)’자형으로 쌓은 북벽 구간으로 대별된다. 일부는 두 가지 축성 방식을 혼용한 경우도 있다. 다듬은 돌을 쌓은 곳이 초축(初築) 구간이고, 부정형의 석재를 사용한 구간이 후대에 수축한 곳이다. 성벽 대부분에는 여러 번의 수축을 거친 기단보축이 남아 있다.

산성 내에서 백제 주거지가 발견되었지만, 산성과 직접적인 관련성을 찾아볼 수 없다. 발굴조사 결과에 따르면 파사성은 신라의 한강 유역 진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유적으로 이곳에서 출토된 대부분의 유물도 신라 토기류이며, 축성기법 또한 신라가 쌓은 성일 가능성이 높다. 출토된 토기의 대부분은 단각고배류와 통일신라시대의 인화문토기, 주름무늬병 등이 주종을 이룬다.

특히 성곽의 초축 시기를 가늠하는 단각고배류는 6세기 중반경의 전형적인 단각고배와는 달리 대각에 투창이 없이 끝이 말려 있는 점, 연질이 다수를 이루는 점 등의 차이점을 보이고 있으며, 인근의 매룡리 고분군의 출토품과 유사하다. 출토된 단각고배는 6세기 중반~7세기 초로 편년되어 산성의 축조와 관련하여 주목되는 유물이다. 다만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신라문화의 직접적인 이식과 함께 토착적인 요소가 함께 나타나 신라의 지방지배 방식의 한 단면을 살펴볼 수 있다.

 

삼국의 항쟁은 4세기 이후 격화되어 5~6세기에는 한강 유역을 놓고 한반도에서의 주도권 쟁탈전이 벌어졌다. 이 시기에 여주지역은 삼국 쟁탈의 주요 대상인 한강 유역에 인근했기 때문에 삼국의 주도권 변천에 따라 끊임없는 변화를 겪었다.

『삼국사기』에 기록된 바에 따르면 고구려와 백제는 4~6세기 동안 37회에 이르는 교전이 있음이 확인된다. 고구려와 백제 사이에 벌어진 최초의 기사는 369년 고구려 고국원왕 39년에 보인다. 그 이전 고구려는 주로 북방 민족 또는 한군현과, 백제는 말갈이나 낙랑과 전투를 벌였다. 그러나 고구려와 백제 사이의 한군현 세력인 대방·낙랑이 소멸된 이후 두 국가간에 직접적인 무력 충돌이 빚어지게 되었다. 5세기 중후반 고구려의 남하에 따라 여주지역은 고구려에 편입되었다.

신라는 6세기에 백제와 연합하여 한강 유역을 점령하고, 백제의 점령지마저 획득한 후 통일기까지 대고구려·백제 전쟁과 대중국 외교의 교두보를 확보하게 되었다. 또한 확대된 영역에 지방관을 파견하여 지방 편제를 신속히 마무리하였고, 활발한 대중국 외교를 통해 삼국 항쟁에서 점차 우위를 점하게 되어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룰 수 있었다.

 

파사성과 마주하는 남한강 건너편 금사면 이포리 태봉산(해발(180m) 정상에는 백제 술천성으로 비정되는 둘레 약 250m의 토축 내성과 내성의 남벽과 연결한 약 100m의 토석혼축의 외성 흔적이 남아 있다.

백제 건국 초기에 보이는 말갈과의 격전지인 술천성(述川城)·술천(述川)을 여주 흥천면 일대로 보기도 한다. 이후 술천성은 한동안 보이지 않다가 다시 663년 고구려와 말갈의 연합군이 술천성을 공격하다 실패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위 사례로 보아 술천성은 말갈이 백제를 공격하는 데 주요 전략 요충지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술천성이 지금의 여주군 금사면 이포리와 외평리 경계의 산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여주지역에서 종래 말갈을 방어하던 요충지인 술천성으로 알려진 금사면 이포리·외평리 성지는 축성규모와 방법, 그리고 축성주체 등을 밝히기 위한 구체적인 학술조사의 예비 차원에서 2011년 가을 충주대박물관에 의해 지표조사가 이루어졌다.

 

<참고자료 : 여주군사 http://history.yj21.net>

 

 

<파사성 남문에 남아있는 옛 성벽>

<발굴조사가 진행된 남서쪽 회절부 치성유적>

<남문과 남서쪽 회절부 성곽 정비 풍경>

<남문과 남서쪽 회절부 성곽 정비 전 풍경.2010.01>

< 주변 풍광과 어울리지 않는 4대강사업의 일환인 이포보 풍경 >

 <이포나루 모래톱 위 이포보 건설 풍경.2010.01>

 <파사성 동쪽 옛 성벽구간>

 <정상부에서 바라본 파사성의 곡선미>

<이포보에서 바라보이는 파사성>

(21세기 남한강 환경파괴의 흉물로 전락할 것인가 수질환경보호의 토목공사물로 기록될 것인가-이포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