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곽을 찾아서

사통팔달 교통의 요지 언양의 옛 치소, 언양읍성(彦陽邑城)(2011.11.20)

필그림2 2011. 11. 22. 15:19

언양읍성(彦陽邑城), 사통팔달 교통의 요지 언양의 옛 치소(2011.11.20)

- 복원사업을 통해 번성했던 옛 읍치의 모습을 재현중인 언양읍성 -

 

 

 

언양읍성(彦陽邑城)은 언양읍 동부리와 서부리 일대 서고동저의 완만한 구릉 평탄면에 축조되어 북서쪽에는 화장산(花藏山,해발285m)과 남쪽에는 남천이 북서에서 남동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현재 언양의 중심부는 이 남천을 사이로 남북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언양읍성 주변으로는 서문지 앞에 언양읍사무소와 남문지 주변에 언양초등학교 등 공공기관이 있어 옛 읍치로써의 상징성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현재 언양은 예로부터 울산,밀양,창녕,경주 등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로써 경부고속도로의 관통과 함께 인근에 2010 10월 경부고속철도 KTX울산역사가 완공되면서 사통팔달 교통의 십자로라는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언양읍성에 대한 조사는 네차례 이루어졌다. 1991년 은하건축사사무소에 의한 정밀지표조사를 시작으로 2001년 동아대박물관에 의한 4개 문지와 옹성을 중심으로 한 체성과 치성,해자 부분을 시,발굴 조사하여 전체적인 읍성의 구조와 현상파악이 이루어졌고, 2002년에는 동 조사기관에 의하여 남문지를 조사하여 전체적인 남문의  구조가 확인되었다. 또한 2010년에는 울산문화재연구원에 의한 북문지 주변 발굴 조사를 통하여 북문지와 옹성의 구조, 체성과 치성의 축조방법과 규모, 해자의 평면형태와 규모 등이 확인되었다.

 

언양읍성에 관한 기록은 <世宗實錄地理志> 彦陽縣條에 최초로 나타나는데 이 기록에 따르면 언양읍성은 조선 전기인 단종2(1454)에 토성으로 초축되었으며, 둘레가 157步 이고 우물 2개소가 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세종7(1425)에 편찬한 <慶尙道地理誌>의 속편으로 예종1(1469)에 편찬한 <慶尙道續撰地理誌> 彦陽縣條에 의하면 邑城은 洪武 庚午年(1390, 고려 공양왕2)에 토성으로 축조하였는데 둘레가 1,417, 높이 8尺 이며 軍倉이 있고 웅덩이(연못) 4곳과 우물 2곳이 있는데 겨울이나 여름에도 마르지 않는다라고 기록하였다.

 

조선 성종12(1481)에 간행한 <東國輿地勝覽> 彦陽縣 城郭條에는 邑城은 토성으로 1,498尺이며 높이 8尺이고 내부에는 우물이 2개소가있다라고 기록하였으며, 이후 중종25(1530)에 간행한 동국여지승람의 증보판인 <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弘治 庚申年(1500,연산군6)에 석축으로 고쳤으며, 둘레는 3,064, 높이 13尺 이며 우물이 3개소 있다라고 기록하였다. 또한 고적조 居知火縣에서는 현재의 치소로부터 동북 5리에 위치하며 토축을 쌓았는데 둘레가 3,208尺 이다라고 기록하였다.

이후 輿地圖書(1757~1765)와 增補文獻備考(1770)의 기록에서도 앞의 기록과 거의 동일하고 다만 여장(藜墻) 834堞 이라고 추가적인 기록을 하였다.

 

정리하자면 언양읍성은 처음으로 고려 공양왕2(1390)에 토축하여 조선 연산군6(1500)에 현감 이담룡(李聃龍)에 의해 석축으로 확장하고 임진왜란 이후 광해군9(1697)에 다시 쌓았다. 전체 둘레는 1,726m, 너비 6m, 잔존 최고 높이는 약 4.5m 이다.

,,,북 체성 중간에 옹성을 두른 문지와 그 좌우 및 모서리에 방형의 치성을 배치하고 체성 바깥에는 다시 해자를 둘렀다.

평지석성으로 동서와 남북이 각각 360m의  정방형 읍성이다.

 

현재 동,,북쪽 성벽의 기저부와 일부 치성이 남아 있으며 남쪽 성벽은 민가가 들어와 그 경계가 불분명할 정도로 훼손되었다.

성벽의 기저부는 대형의 자연석을 앞면만 거칠게 가공하여 초석으로 삼고 점차 올라갈수록 작은 돌을 이용하였으며 성돌사이 홈은 많은 잔돌을 끼워 막았다.

축성의 특징은 임진왜란 전기의 남해안 연안의 읍성과 진보()의 축성수법을 보여주고 있다.

서쪽 성벽은 북서쪽에서 서문지까지 복원을 하였으며 북쪽 성벽은 동북쪽에서 치성 부근까지 일부 복원이 이루어졌다.

북쪽성벽의 복원과 함께 북쪽 해자 발굴 후 정지작업(공원화사업?)을 하고 있었다.

서쪽 성벽은 서문지 주변까지 기저부가 잘 남아있어 성곽의 흔적을 또렷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참고자료>

<울산,울주지역의 관방유적> 한국성곽학회 2011년도 춘계학술대회 자료집

<울산 울주 언양읍성 북문주변 성곽 정비사업부지내 유적 발굴조사 약보고서> 울산문화재연구원 2010

<한국남해연안성지의 고고학적 연구> 심봉근 학연문화사

 

 

<북쪽 성벽>

<북문(계건문)터 옆 치성과 성벽>

<복원된 동북 성벽>

<동북 성벽 치성에서 바라본 읍성내부 전경>

<복원 중인 북쪽 성벽>

<서쪽 잔존 성벽>

<서쪽 성벽과 미나리밭(꽝)>

<언양읍성에서 가장 큰 성돌>

<서문(애일루) 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