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곽을 찾아서

외동 관문성 답사(2010.9.20)

필그림2 2010. 9. 24. 14:53

추석을 맞이하여 고향에 내려갔다.

고향에 내려가는 주목적은 당연히 자주 만나지 못하는 부모,형제,친척,친구를 만나는 일이지만, 또한 나는 고향산천의 자연과 문화유적을 답사하는 시간도 조금 할애해 놓는다. 아침 8시15분 기차로(다행히 기차표 인터넷 예약을 해놓았다) 경주에 도착하니 오후 12시40분 이였다.

경주역에서 형이 마중을 나와있어 우리 가족은 편안하게 집으로 올 수 있었으며 오는 도중 경주박물관을 들러 "원효대사" 특별전을 관람하면서 원효가 썼다는 "판비량론" 필사본과 2009년도에 발견된 "문무대왕릉비문"도 실견하였다. 관람을 마치고 시간관계상 다른 전시관에는 들르지않고 고향집으로 향했다.

가족들과 조금 늦은 점심을 먹고 얘기를 나누다가 잠깐 산책을 한다며 조금은 분주해진 집안을 홀로 나와 결혼전 고향에 내려올때면 가끔 들리던 모화리 관문성을 찾았다. 모화리는 울산과 경북 경주의 경계지역으로 주변에 관문성을 비롯한 원원사지,모화리지석묘,야철지,구어리고분군,중산리고분군,문산리고분군,석계리선돌유적 등 많은 유적이 있다.

 

관문성은 신라시대 울산방향에서 쳐들어오는 왜구를 막는 남쪽방향 도성 최외곽 방어시설이였으며 오늘날엔 도(시)경계지가 되었다.

동대산(삼태봉) 남쪽 양남면 신대리 산정상(신대리성,양남방향 동해안이 조망되며 별개의 축성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축성방식으로 보아 관문성의 일부분이라 해야할 것이다)에서 시작하여 서쪽 계곡으로 모화리를 따라 동천(우박천)을 건너 울산광역시 북구 중산동,천곡동 등을 지나며 외동읍 녹동리와 범서읍 두산리 도(시)경계지점을 거쳐 치술령 망부석아래까지 12km 길이로 신라 성덕왕때 축성된 통일신라시대 대표적인 성곽 유적이다.

오늘은 이화동(중산동)에서 매곡으로 들어가는 구간과 모화리 7번국도 복원구간에서 동대봉산으로 올라가는 옛 성벽흔적과 관문성 서쪽인 녹동리 구간을 짧은시간내에 답사했다.

 

먼저 모화리에서 7번 국도를 따라 남쪽으로는 울산광역시 이화동과 중산동이 접해있는데 주변에는 중산동고분군과 전탑지 그리고 조금 멀리 달천야철유적지등 고대유적이 많이 존재한다. 모화의 관문성은 태화강의 지류인 동천(우박천)을 지나 건너편 산을 통해 순금산을 향하고 이곳 매곡주변을 지나 녹동리에 이른다.

이화동과 중산동의 아파트촌을 끼고 매곡쪽으로 가면 강을 건너 마을 야산아래로 관문성이 축성되어 있는데 잡목이 우거져 흔적을 찾기가 여간 쉽지 않았다.

아주 약하게 부분적이지만 축성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축성은 모화리구간의 성돌보다 가공이 덜되었고 높지도 않은것 같으며 막쌓기 형식을 보이고 있었다. 내가 확인한것이 성벽 속쌓기 돌일지도 모르겟으며 내탁법을 사용하였다.

산길을 따라 몇백미터를 들어갔지만 성곽의 흔적을 찾을 수 없어 다시 모화리로 향했다.

 

<모화리 동해남부선 주변 복원 성곽 1990.7>

 

모화리에는 약 200여 미터정도 성곽 복원구간이 있으나 7번국도와 동해남부선 철로로 인하여 성체가 끊겨져 있다. 신대리성과 녹동리(성저마을) 구간과 함께 대표적이인 관문성 탐방구간이다. 모화리 복원구역은 성문지로 추측되는 구간과 수문도 화인된다. 중학교 시절에는 성곽 주변으로 오솔길이 잘나있어 짧은 성벽길이지만 호젓한 산책길이였었는데 풀이 우거져 이번에는 산행복장이 아니라 반바지차림이라 도저히 접근하기가  어려웠다.

다보탑 모탑옆 철도교각아래로 차를 몰아 포장길이 끊나는 지점을 지나 계곡을 따라 성곽을 흔적을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많은 부분 훼손되어 있었지만 건물지로 보이는 평지도 있고 길이 50cm, 높이 30cm는 더 될 것같은 성돌들이 부분적으로 보였다. 성돌로서는 상당히 크다고 볼 수 있겠다. 계곡을 따라 계속들어가면 무속행위를 하는 굿당이 있는데 그 주변에는 30~40cm 크기의 돌을 모서리까지 잘 다듬어 축성한 흔적이 부분적이나마 잘 남아있는데 한층 진보된 축성기법을 보여주고 있었으며 서울 금천구 호암산성의 축성술과 석공기술과의 유사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본격적인 발굴조사가 이루어진다면 관문성의 실체를 더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태화고등학교와 마을주변을 더 돌며 관문성의 흔적을 좀더 찾다가 녹동리 주변의 관문성 흔적을 찾아보기로 했다.

 

모화 울산시외버스 종점에서 석계리 방향으로 돌려 들녁을 따라 차를 달려 울산광역시와 서남부로 접해있는 녹동리에 도착했다. 이곳 녹동리의 지명이 성저마을(관문성아래마을)인지라 성과 관련된 역사성을 말해준다.

녹동리와 울산광역시 범서읍 두산리를 경계로 하는 지점에 성곽의 흔적이 잘 남아 있다. 현재의 관통 도로는 옛 성문지로 추측되고 성문지 좌우로 축성의 흔적이 잘 남아있다. 성벽의 높이가 2m정도로 낮아져 있으며 성돌을 빼써서 그런지 아래 몇단을 남겨놓고 상부로 갈수록 내부 채움석만 확인된다. 이곳은 모화리 7번국도 구간과 함께 사람의 이동이 활발했을것 같으며 교통의 요지였음을 추측하게 한다.

이 일대는 평지라서 내외 협축의 축성술을 보이고 치술령 방향으로 성벽은 연결된다. 성벽위로 아름드리 수십기의 고목들이 있어 고성의 역사를 실감케하며 아름다운 풍광을 더해준다.

 

통일신라시대 대표적인 성곽인 관문성의 흔적을 대강이라도 답사한것에 위안을 삼고 삼태봉  정상 기박산성에서 치술령에 이르는 12km의 관문성 종주답사를 기약해본다. 

 

<걷기 좋았던 관문성 성곽길 19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