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곽을 찾아서

경북 최고의 산 영양 일월산에도 산성이 있었다 - 영양(英陽) 일월산성(日月山城)('16.10.02 일)

필그림2 2016. 10. 7. 02:28

경북 최고(最高)의 산 영양(英陽) 일월산(日月山,1219m)에도 산성이 있었다 - 영양 일월산성(가칭)

- 대한제국말 신돌석,이강년등 의병활동의 주요 무대이자 오늘날 정상에는 군사시설과 방송국 중계소가 설치되어 있는 곳 -



영양군 일월면 용화리 윗대티골에서 시작하여 일월산 정상(일자봉)으로 향하는 등산로의 돌무더기들은 정교하게 쌓은 것 같지는 않지만 뚜렷한 산성의 흔적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윗대티골 주차장 뒤 7부능선에서 시작하여 일자봉 정상과 출입금지구역인 군부대 능선을 따라 연결되다가(추정) 월자봉 아래 윗대티골(큰골) 7부 능선까지 산성을 축성한 것으로 짐작된다. 이 산성의 대략적인 특징은 고려~조선에 이어지는 피난성으로 급조된 것으로 보여지며, 자연 암반 위 막돌 또는 거칠게 가공한 돌을 이용하여 높이 1m 내외로 쌓았다. 일부 구간에는 토축의 흔적도 확인되고, 추정 봉수지 1개소(연조 2개)와 문지(추정 서문지 또는 남문지) 1개소 등이 확인되었다. 대한제국 말기 영양,청송,울진,봉화,영덕 등 경북 북부지역을 중심으로 신돌석과 이강년의 의병부대가 활동한 곳임을 미루어 짐작해보겠는데 이곳 일월산성도 그 당시 유격전에 활용된 산성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일월산 중심에 위치한 이 城에 대하여 문헌 기록이나 전해 내려오는 주변 지역 지명이 없으므로 일월산성(日月山城)이라 칭하고자 한다. 일월산은 경북 오지에 위치하여 찾는 등산객들이 많지는 않다. 등산로를 따라 이어지는 돌무더기들이 산성의 흔적임을 알 수 있도록 기초조사가 하루빨리 이루어질 수 있길 바라며 일월산성의 축성시기와 사용주체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 영양 일월산의 산성에 대한 최초 보고('16.10.02 일) -




신돌석(申乭石) 의병장

1878년 11월 26일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도곡리의 평범한 농가에서 출생했다. 을미사변으로 전국적으로 의병 운동이 일어날 때 18세의 나이에 영덕에서 처음 의병을 일으켰다. 그는 경상북도 동해안 지방을 차례로 점령하는 큰 전과를 올렸고, 이에 경북 출신으로 경기도 일대에서 활동하던 김하락 부대에 안동유시연과 함께 합세하였다. 그러나 김하락의 의병 연합 부대가 영덕에서 일본군에게 대패하여 김하락이 중상을 입고 투신 자살하면서 남은 의병은 일월산으로 후퇴하여 유격전으로 맞섰으나 차차 해산되었다. 신돌석은 1905년 을사늑약의 강제 체결 이후 동생 신우경과 함께 재차 의병을 일으켰다. 울진군에서 일본 선박을 여러척 격침시키고 강원도 동해안 일대, 경상북도 내륙 지방, 원주 등 강원 내륙 지방까지 세력을 확대했다. 이때부터 그는 '태백산 호랑이'로 불릴 만큼 신출귀몰한 전공으로 이름을 날렸고 여러 구전 전설들도 만들어졌다. 이강년의 의병대와 순흥(영주시)을 공격하는 연합 작전을 시도하는 등 계속되는 전과를 올리면서 경북 일대의 대표적인 의병장으로 부상하여, 이인영의 연합 의병 13도 창의군이 결성되었을 때도 영남 지방을 담당하는 교남창의대장에 선임되는 등 양반 출신의 유학자 의병대장들도 그를 완전히 무시하지는 못할 정도의 세력을 형성하게 되었다. 1906년 11월 신돌석 의병부대는 일월산·백암산·대등산·동대산 등지에서 유격항쟁을 벌였고, 1908년부터는 유시연의 부대와 연계하면서 주로 유격전 위주로 의병 항쟁을 펼치다가, 그해 겨울 영덕의 눌곡(訥谷)에서 암살되었다. (위키백과 참고)


이강년(李康䄵) 의병장

1858년(철종9) 경북 문경 출신이다.

1907년 5월 제천에서 대규모의 의병부대를 일으켰으며 일제에 의해 고종의 강제 퇴위와 군대 해산가 해산되자, 제천·충주·단양을 중심으로 경북 문경·영주·봉화

강원도 영월·태백·강릉 경기도 가평 등, 태백산과 소백산 설악산과 화악산 줄기를 따라 광범한 지역에서 일본군과소백산·일월산 일대에서의 일본군을 격파하고 큰 전과를 거두었으나, 1908년 7월 2일 제천 작성산 전투에서 일본군 수비대에 체포됐다. 같은 해 서울 일본군 헌병사령부로 압송돼 교수형을 선고받고 10월 13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경북일보 2016년 9월 8일자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