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곽을 찾아서

한성백제 도성 방어를 위해 축성한 의왕(義王) 모락산성(慕洛山城)(2013.02.07)

필그림2 2013. 2. 7. 18:04

한성백제 도성 방어를 위해 축성한 의왕(義王) 모락산성(慕洛山城)(2013.02.07)

- 성벽은 희미해져가지만 삼국시대에서 한국전쟁에 이르기까지 군사적 요충지이자 격전의 현장으로 기억해야 할 유적 -

 

 

 

경기도 서남부에 위치한 의왕시는 과천,안양,군포와 더불어 서울과 수원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국도 1호선과 경부철도가 관통하고 있어 철도화물차량기지창, 철도차량산업, 내륙컨테이너기지(ICD), 철도대학(현 한국교통대학), 철도박물관 등 일찍부터 물류운송과 관련된 산업과 교육이 발달한 도시이다.

그러나, 의왕의 역사적인 면을 볼 때 옛 문헌기록이나 유적을 찾기가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의왕을 비롯한 인근 안양,군포 지역에서는 지역 곳곳에 고인돌이 골고루 분포하고 있어 청동기시대 이전부터 사람이 거주하였음을 알 수 있으나 급속한 개발로 인해 제대로 된 유적보존과 유물수습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대부분 대규모 택지개발에 의한 구제발굴 성격의 조사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의왕 주변지역 조사자료를 요약해보자면 군포시 부곡동의 안산-신갈간 고속도로 건설 과정에서 석영제 석기의 발견과 안양 관양동 선사유적에서 석영재 찍개류가 수습되어 구석기시대의 존재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2000년과 2002년 2차례에 걸친 안양 관양동 선사유적 발굴조사를 통하여 청동기시대 장방형 주거지 8동이 발견되었다.

또한 2002년 군포시 대야미동유적과 2008년 부곡동유적에서 청동기 주거지가 확인되었으며, 여기에서 구순각목문 옹형토기, 이중구연토기, 공열토기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2005년 군포 부곡동 택지개발지구 조성에 따른 구제발굴에서 삼국시대 토광묘와 수혈유구, 고려시대 추정 토광묘, 조선시대 건물지, 기와가마 등이 확인되기도 하였다. 2010년 군포시 송정동 택지개발지구사업의 일환으로 시행된 대야미동, 도마교동 발굴조사에서 도마교동유물산포지1에서는 수혈주거지 1기, 수혈유구 6기, 토광묘 6기, 회곽묘 9기 등 22기의 유구가 확인되었으며, 도마교동유물산포지3에서는 수혈주거지 12기, 수혈유구 1기, 토광묘 20기, 회곽묘 10기 등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에 걸친 다양한 시대상을 보여주는 유구가 확인되었다. 또한 1990년 산본신도시 조성과정에서 발굴된 9기의 통일신라시대 고분 중 3기가 현재 용인시 경기도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이전 복원되어 있다.

 

의왕시에서는 제대로된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다가 2004년 의왕 이동 ICD진입로 개설사업 추진 중 청동기시대 유물이 발견되어 2005년 시굴조사와 발굴조사를 통하여 청동기 수혈주거지 13동과 통일신라 이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석곽묘 4기가 발견되었다. 이 과정에서 구순각목공열토기 등 무문토기와 간돌검, 돌도끼 등 청동기부터 철제 요대 철제못, 병, 완 등 통일신라에 걸친 130여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2008년 2월에서 2009년 10월 말까지 포일2지구 택지개발사업지역 시굴 및 발굴조사과정에서 구석기시대, 삼국시대,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물 1,322점이 확인되었다. 이렇듯 의왕과 주변지역에서 구석기시대 이래의 자취를 말해주는 유적발굴 조사가 제한적으로나마 이루어지고 있어서 의왕의 역사를 복원할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있다.

 

<모락산 정상 국기봉에서 바라 본 모락산성> 

<모락산성 출토 백제 토기편 ⓒ 2008.12>

 

의왕지역의 고대사를 말해주는 가장 대표적인 유적은 내손동과 오전동에 걸쳐있는 모락산(慕洛山, 해발385m) 정상부에 남아있는 한성백제시대 관방유적인 모락산성과 그 주변지역에 산재해있는 고분군일 것이다. 모락산성과 관련된 주변의 초기백제 유적과 유물로는 과천시 문원동유적과 관문동유적, 평촌신도시 개발과정에서 발견된 귀인마을유적과 의왕시 부곡동 출토 백제토기류, 군포시 산본동 백제고분 1기 등이 있다.

모락산 정상에서 동쪽으로는 광교산과 마주하고 있고, 서쪽으로는 군포시와 수리산이 바라보이고, 남쪽으로는 의왕시와 지지대 고개를 넘어 수원이 훤히 보이고, 북쪽으로는 국도1호선을 따라 서울시 금천구와 안양시 평촌신도시와 관악산 등이 손에 잡힐듯 조망된다. 또한 모락산 일대는 평촌(벌말)이라는 지명이 말해주듯이 수리산에서 발원하는 산본천과 광교산에서 발원하는 학익천 등이 안양천을 형성하여 한강으로 흐르면서 넓은 평야지대를 이루고있다.

모락산성은 계곡을 사이에 둔 동고서저(東高西低) 지형의 산 정상부를 감싸고 있는 마안봉형 테뫼식산성으로 동벽 186m, 서벽 295m, 남벽117m, 북벽 322m의 사다리꼴 형태로 지세에 따라 자연암벽을 그대로 이용한 구간과 편축, 내외협축, 토축 등을 혼합하여 축성하였다. 높이는 최대 6~7m 정도 되는 곳도 있으나, 성벽을 따라 등산로가 만들어지면서 많이 허물어져 정확한 축성형태와 높이를 파악하기 어렵다.

 

모락산성은 경기 남부지역에서 천안-평택-오산-수원-의왕으로 이어지는 교통로와 경기 서부 해안 지역에서 남양만을 통하여 화성-안산-군포-의왕으로 이어지는 교통로가 만나 서울 금천구로 통하거나 과천을 지나 서울 강남구를 통해 풍납토성이나 몽촌토성으로 비정되는 한성백제 도성인 하남위례성과 연결되는 지점에 위치해 있어 주변을 쉽게 관방하고 통제할 수 있는 교통 및 전략의 요충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모락산에서 보이는 군포,안산 방향과 수리산>

<모락산에서 바라본 서울 금천구와 안양 방향>

 

모락산성이 문헌에 처음 소개된 것은 1943년 일제침략기에 발간된『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朝鮮寶物古蹟調査資料)』로써 "慕洛山城, 軍浦場驛의 東約十町 慕洛山 頂上에 있는 小形의 土壘이며, 地元民은 이를 文祿役 때에 쌓은 것이라고 하나 믿기 어렵다. 由來不明이다"라고 기록하였다. 여기에서 말하는 <文祿役>은 <임진왜란>의 일본식 표현이다. 또한 한국보이스카우트연맹이 1989년에 간행한 『한국의 성곽과 봉수』와 1999년 경기도박물관에서 발간한 『경기문화유적지도Ⅰ』에서도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의 내용을 그대로 재인용하였다. 이후 2000~2001년 세종대박물관에 의해 실시한 의왕시 문화유적 지표조사에서 성내에서 수습한 유물을 통하여 한성백제기 산성으로 보고하였다. 2005년 세종대박물관의 모락산성 정밀지표조사에서 전체 둘레가 878m 이고, 성벽과 문지(門址) 등 16개 시설물이 확인되고 한성백제기 토기류가 다량 출토됨에 따라 4세기 후반에서 5세기 중후반에 축조됐다는 결론을 내렸다. 특히 북쪽 성벽에서 지름 8.4㎝, 바닥지름 7.0㎝, 높이 14.2㎝의 5각형 회색경질 평저단경호(短頸壺)와 건물지로 추정되는 평탄지에서 높이 60.4㎝, 몸체 최대 지름 49.6㎝, 몸체 두께 최대 0.7㎝의 회색경질 대형 옹(甕,독)이 완형에 가깝게 발견되었다.

모락산성은 한성백제기의 왕성(풍납토성으로 비정)을 중심으로 하는 관방체계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산성이자 의왕시의 고대사를 복원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되어 2007년 9월 경기도기념물 216호로 지정되었다.

 

 <모락산성 남서쪽 성벽 ⓒ 2008.12>

 <모락산성 북서쪽 성벽 ⓒ 2008.12 >

 <모락산성 북쪽 성벽 ⓒ 2008.12>

<모락산성 북동쪽 성벽 내측 - 모락산성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 2008.12>

 

또한 모락산은 6·25전쟁 당시인 1951년 1월 30일부터 2월 4일까지 수원을 지나 북진하던 국군 1사단 15연대가 중공군 1개연대을 상대로 수리산-모락산-관악산을 연계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곳이다. 4일간의 혈전에서 한국군 1사단 15연대는 중공군 663명을 사살하고 90명의 포로를 획득했다. 한편 국군도 전사 70명, 부상 200여명의 피해를 입었다. 이 전투의 승리로 유엔군은 1번국도와 47번국도를 통제할 수 있게 되었고, 안양을 지나, 인천, 영등포지역으로 진출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고, 한강 이남 전선에서 주저항선을 형성하여 서울을 사수하려는 중공군의 의도를 무산시켰다. 현재에도 모락산 주변으로 군부대가 위치해 있으며 산성의 북쪽 성벽 일부가 군사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있다.

 

이렇듯 모락산성의 지리적 위치는 삼국시대에서 부터 6.25전쟁과 같은 동족상잔의 고통스런 현대사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역할에 있었다. 오늘날 모락산은 의왕시민은 물론 인근 안양,군포,과천 시민이 관악산,수리산,청계산과 더불어 즐겨찾는 산행지이다. 40여분 땀흘려 오르는 산행길에 펼쳐지는 주변 풍경에 가슴이 탁 트이면서 정상에 다다르면 희미하게나마 남아있는 옛 산성과 전적지는 역사의 산 교육장이 된다. 모락산은 건강을 위한 가벼운 산행과 역사공부를 병행 할 수 있는 의미있는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불행히도 수많은 모락산 등산객들이 정상부에 남아있는 모락산성의 존재를 모르거나 무시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다행히 모락산성과 전적지 안내문이 몇군데 설치되어 있어 오고가는 사람들과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의 관심과 주의를 모으게 하고 있다.

 

의왕시는 모락산성 종합정비계획을 수립해 본격적으로 발굴작업을 벌인 후 복원하여 역사교육장으로  활용할 계획에 있다니 벌써 기대가 앞선다. 아직 후속 진행소식이 없지만 충실한 예산과 계획이 수립된 후 본격적인 발굴을 통한 모락산성의 정확한 축성 주체와 축성 시기를 판단할 수 있는 결과물이 나오길 바라고, 또한 모락산성이 올바른 복원과 보존을 통한 소중한 문화유적으로 남겨지길 바란다.

 

 

 

 

 

<참고자료>

 

『軍浦 松亭 國民賃貸住宅團地 建設敷地 內 軍浦 渡馬橋洞 遺蹟』「중앙문화재연구원」 2012.

『軍浦 富谷宅地開發地區 內 軍浦 富谷洞 遺蹟』「중앙문화재연구원」 2008.

『의왕ICD 진입로 개설공사 구간내 의왕 이동 청동기유적 발굴조사 보고서』「단국대매장문화재연구소」 2007.

『4世紀 漢城百濟의 關防體系 硏究』「단국대대학원 사학과 석사학위논문(강형웅)」 2007.

《모락산성을 통해본 백제시대의 의왕시》 「계간 한국의 고고학 창간호」 김영관  주류성출판사  2006.

『百濟 漢城期 城郭 硏究』「세종대대학원 역사학과 석사학위논문(오강석)」2006.

『百濟 漢城期 慕洛山城에 관한 硏究』「선사와 고대18호(한국고대학회)」 하문식,백종오,김병희 2003. 6

『한국의 성곽과 봉수』「한국보이스카우트연맹」 1989.

【위키백과사전(http://ko.wikipedia.org)】 [모락산전투]

  "모락산성서 5각형 백제토기 출토"  연합뉴스 2006.4.9자 기사

『포일동 출토유물展』「의왕향토사료관 특별기획전시 소책자」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