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사 자료

신흥무관학교 100주년 기념 학술회의 자료

필그림2 2011. 8. 4. 20:33

 

잊혀진 독립전쟁기지 - 신흥무관학교 재조명

설립 100주년 기념 학술회의 ‘신흥무관학교와 항일무장독립운동’

 

 

<신흥무관학교 100주념 기념우표 2011.6.13>


 

오는 6월 10일은 항일무장투쟁의 금자탑 신흥무관학교 설립 100돌이 되는 날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5월 13일 오후 2시 국회헌정기념관 대강당에서 신흥무관학교가 독립운동사에 차지하는 위상을 재조명하는 학술회의가 신흥무관학교100주년기념사업회 주최 국가보훈처 후원으로 열린다.

신흥무관학교는 나라를 잃은 경술국치 다음 해인 1911년 만주 길림성 추가가 삼원포에서 신흥강습소란 이름으로 개교한 뒤, 교세 확장을 거듭하여 1920년까지 3천 5백 여 명에 이르는 독립군 간부를 배출한 일제강점기 최대의 항일무장투쟁 기지이다. 이번 학술회의에는 독립운동사 분야의 권위 있는 연구자들이 대거 참여해, 실상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신흥무관학교의 활동상을 조명하고 역사적 의미를 재해석한다.

신흥무관학교와 망명자들』의 저자로 이 분야의 최고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는 성균관대 사학과 서중석 교수는 학술회의에 앞서 배포한 기조강연문을 통해 신흥무관학교는 “대한제국 무관학교와 의병의 맥을 이어받았다는 점에서도 민족사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고 평가하면서, 전세계 독립전쟁사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대규모 전쟁인 청산리대첩도 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이 주도하였다고 강조했다. 또 “(우리나라) 군은 독립운동의 정신을 이어받는 문제를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사관학교의 경우 대한제국무관학교, 신흥무관학교의 맥을 이어받고 독립운동사, 독립군사를 교육해야 할 것”이라고 군의 역사인식 전환을 촉구했다.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와 신흥무관학교’를 주제로 다룬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 관장은 양자의 연관성을 교육과정과 군사간부 양성을 중심으로 살폈다. 즉,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 출신 장교들이 국권 상실 후 곧바로 만주로 망명, 신흥무관학교를 비롯한 독립군 양성기관에서 교관 등으로 활약함으로써 항일무장독립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음을 밝혀, 국군의 정통성이 단절되지 않고 이어져 왔음을 입증했다.

윤경로 전 한성대학교 총장은 ‘1910년대 독립군기지 건설운동과 신흥무관학교’란 논문에서 독립운동 방략의 전환과 만주지역 독립군기지 건설운동의 배경을 조명했다. 그는 1910년대 항일운동의 변화가 일정 부분 한인들의 대대적인 해외이주 현상과 관련되었음을 주목하면서 신흥무관학교 설립의 인적,물적 토대를 분석했다.  신흥무관학교를 유지 발전시킨 주요 인물들을 이회영을 중심으로 한 상동파, 이상룡 김대락 김동삼 등 안동지역 혁신유림계, 이건승 정원하 홍승헌 등 강화학파 계열로 분류한 것이 눈길을 끈다.

한시준 단국대학교 역사학과 교수는 ‘신흥무관학교 이후의 독립군 간부양성’을 주제로 한 논문에서 1920년까지 존속했던 신흥무관학교의 폐교 이후부터 1940년대까지 면면히 이어져 온 항일독립군 군사간부 양성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1920년대의 경우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육군무관학교와 노백린이 중심이 되어 미국에서 설립한 비행사양성소를 군사간부 양성의 사례로 제시하고, 이어 중국 국민당 정부의 지원을 받아 운남강무당, 황포군관학교를 통해서도 간부 양성을 지속해 온 점을 밝히고 있다. 1930년대에는 김원봉이 중심이 된 조선혁명간부학교를 비롯해 낙양군관학교 성자군관학교가, 1940년대에는 한국청년훈련반 한국광복군훈련반 항일군정대학 등으로 독립군 간부 양성의 맥이 이어짐을 설명하고 있다.

창군』의 저자인 한용원 한국교원대학교 명예교수는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에서 해방 후 대한민국 국군의 탄생까지의 역사적 맥락’이라는 발표문을 통해 국군의 창군사를 보는 시각을 광복군모체론 경비대모체론 미제용병론 등 3가지로 구분하고, “경비대 창설의 주역이었던 군사영어학교 출신 등이 군의 수뇌부를 형성했기 때문”에 “경비대를 국군의 기원으로 보는 경비대 모체론이 많이 퍼져 있다”고 지적하면서, 그 결과로 ‘독립군-광복군-국군'으로 이어지는 정통성이 확립되지 못하고 군의 역사가 왜곡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교수는 나아가 “쿠데타로 등장한 구군부·신군부가 국군의 민족사적 정통성을 더욱 훼손”시킨 사실을 환기하면서 “제국주의 국가의 식민지배로부터 광복한 우리는 역사적 정통성을 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이 중심이 된 독립군의 활동에서 찾으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논지를 폈다.

한편 신흥무관학교 100주년 기념사업회는 이번 학술회의를 시작으로 100주년 기념식 겸 문화행사(6월 10일), 우표 발행, 현지답사(6, 7, 10월), 순회 전시회(6월~8월) 등의 각종 행사를 통해 신흥무관학교의 역사적 의의를 알려나가는 한편 국군  뿌리 찾기 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할 예정이다.

 

신흥무관학교100주년기념사업회(www.sh100th.org)

신흥무관학교100주념기념학술대회자료집.pdf
1.87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