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사 자료

[법률저널] 오시영의 세상의 창-똥 뀐 놈이 성내는 세상(2015.08.14)

필그림2 2015. 8. 19. 21:34

오시영의 세상의 창-똥 뀐 놈이 성내는 세상

오시영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2015년 8월, 광복 70주년을 맞은 대한민국은 “똥 뀐 놈들이 성질내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어쩜 우리 속담은 저리도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영어로는 “You get angry at others for your own mistake.”라고 젊잖게 표현하지만, 우리말로 해석하면 바로 똥 뀐 놈이 성낸다라는 속담이 된다. 제가 실수해 놓고 남에게 화를 내는 것, 바로 잘못한 자들이 득세하는 것, 이게 바로 똥 뀐 놈이 성질내는 것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광복 70주년, 거리 곳곳에 태극기가 휘날린다. 태극기는 국기봉에 걸려 바람에 휘날려야 한다. 그런데 어찌된 일이지 수많은 국기들이 벽면에 붙어 꼼짝하지를 못하고 있다. 어떤 애기 국기는 땅바닥에 꽂혀 있다. 꽃밭을 지나다 보니 수많은 태극기가, 우리가 나라사랑할 때쯤 손에 들고 흔들었을 그 조막만한 크기의 태극기들이 땅바닥에 꽃보다 많이 꽂혀 있다. 휘날리지 않는 태극기를 보며, 휘날리지 못하는 광복 70주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더운 삼복더위를 차가운 얼음왕국으로 만들어 버린 이들이 도대체 누구인가? 

광복 60주년이던 2005년도를 생각해 본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9만5천여 명의 이산가족에게 위로의 편지를 보냈다. “안타까운 마음을 지울 수 없는 것은 광복 60년의 역사는 동시에 분단의 역사라는 사실 때문이며, 북에 남겨 둔 가족과 고향산천에 대한 이산가족 여러분의 사무친 그리움을 아직도 씻어드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산가족 여러분의 아픔은 7천만 우리 민족 모두의 아픔이며 반드시 해결해야 할 시대적 과제입니다.”라는 절절한 위로의 편지를 보내며 국가지도자로서 분단의 아픔을 가슴 깊이 아파하고 미안해하였다. 광복 60주년을 우리 남쪽만 민주주의국가가 되었다고 기뻐할 것이 아니라, 북쪽이 독재국가로 인해 신음하고 있는 현실, 남북분단의 아픔을 절실히 느끼며, 그 최대의 피해자가 이산가족임을 인식한 깊은 회한의 편지가 바로 저 이산가족들에 대한 대통령의 위로의 편지였다.  

조용필, 그는 지금부터 10년 전인 2005년 8월 23일 북한의 심장부 평양 한 가운데에서, 현대건설 정주영 회장이 지어 준 정주영체육관에서 광복 60주년 기념 단독 콘서트를 열었다. 북한 주민은 우리의 가왕 조용필이 부르는 노래 하나하나에 열광했고, 가슴 뭉클해 했다. 남한의 우리 전 국민도 SBS를 통해 그 공연을 볼 수 있었고, 남북 간의 화해가 이런 것이로구나 실감하며 평화가 유지되는 것을 감사했고, 멀지 않은 통일에 대한 더 큰 기대를 가졌다. 서울에서는 남북 축구대회가 열렸고, 곳곳에서 자발적 축제가 펼쳐졌었다. 모든 것이 자유로웠기 때문에 가능한 일들이었다.

광복 70주년, 박근혜 정부 역시 곳곳에 대형태극기를 내걸고, 광복 70주년의 기쁨을 노래하고 있다. 더군다나 오늘, 2015년 8월 14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고, 전국 고속도로의 통행료를 면제해 주는 특혜(?)를 베풀기도 했다. 당연히 한국도로공사와 민자도로건설회사들은 반발했고, 정부는 내년 예산으로 하루 무료운행토록 한 돈 184억 원 정도를 보상해 주겠다고 서둘러 봉합에 나섰다. 국민들은 분노했다. 내가 그 날 일하면서 번 돈으로 낸 세금을 가지고, 그 날 공휴일이라며 놀러 나간 사람들의 고속도로통행료를 면제해 주는 것이 타당하냐며 반문했다. 지난 8월 4일, 남쪽 휴전선 철책선 근처에서 북한이 설치한 것으로 보이는 목함지뢰로 아까운 두 젊은 하사관이 다리가 절단되는 사고를 당하였다. 국방부 장관은 그러한 사실을 청와대로 보고했고, 대한민국 정부 통일부는 그 다음날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남북 간 당국자 회의를 제안하였다. 당시는 김대중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가 북한을 방문 중이었다. 당연히 북한은 남한의 제의 자체를 접수하는 것조차 거부하였다고 한다. 북한도 똥 뀐 놈이 성질내기는 마찬가지이다. 유승민 새누리당의원은 “정신 나간 일 아니냐?”라고 국방부장관을 질책하였다. 정부 부처 간의 상호공조체제가 붕괴되었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었다. 

우리 속담 그대로, 똥 뀐 놈들이 성내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도무지 책임지는 공직자가 없다. 남쪽 철책선 1미터 반경 내에 북한군이 침투하여 목함지뢰를 설치하고 유유적적 물러갔으면 이것보다 더 큰 경계 실패가 어디 있겠는가? 예전 같았으면 사단장은 물론이고 군사령관이나 국방장관까지 책임지고 사표를 내야 하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참 희한한 나라가 되어가고 있다.  

낙지는 다리가 여덟 개다. 산 낙지의 다리를 자르면 곧바로 죽지 않고 살아서 꿈틀거린다. 대한민국 정부가 흡사 여덟 개의 다리가 잘린 채 잘린 줄도 모르고 제 혼자 살아 있다고 꿈틀거리는 낙지 다리 꼴이다. 광복 70주년, 남북 간의 대화는 완전 절단되어 있다. 광복 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평양을 방문했던 조용필 대신 광복 7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적어도 한류스타 2피엠이 되었든 포미닛이 되었든 평양을 찾아가 정신을 빼놓을 만한 공연을 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하는 것이 정치 아니겠는가? 사흘 차이면 세대 차이가 난다는 요즘, 10년 세월 동안 남북 간은 경색되고, 경색되어, 이제는 철저하게 잘려나간 낙지 다리처럼 분단의 아픔이 고착화되면서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꿈틀거리는, 결국은 죽게 되고 말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박근혜 정권은, 광복 70주년을 기념하겠다고 야단인데, 분단의 고착화 이외에는 내세울게 없다. 남북 간의 문제가 제대로 풀린 것이 하나도 없고, 한일 간의 문제 역시 꼬일 대로 꼬여 있다. 취임 2년 반이 되도록 한일 정상회담이 열리지 못하고 있다. 물론 아베 정권의 극보수화로 인해 독도문제와 위안부문제 등 한일 간 분쟁유발책임이 크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마저 두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광복 70주년이면, 적어도 통일에 대한 비전이 국민들에게 제시되어야 하고, 국민들이 통일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소박한 기대감을 가질 수 있는 상황이 전개되어야 한다. 지난 광복 60주년 기념일에는 그러한 소박한 기대를 가졌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광복 70주년이 된 오늘, 대한민국 역사는 후퇴에 후퇴를 거듭하고, 1976년 판문점 도끼만행 사태 때처럼 철책선 근처에서 북한의 지뢰가 폭발하여 미래가 창창한 두 젊은 하사관의 다리가 절단되는 갈등과 위기가 고조되고 있을 뿐이다.

국무회의석상에서, 8월 14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자는 안건이 나왔을 때 어느 누가 반대의견을 개진했을까? 더 나아가 고속도로 통행료를 면제해 주자는 안건을 누가 처음 발안하고 상정했을까? 자본주의국가에서 유료 고속도로 통행료를 하루 면제해 주자는 발상이 어떻게 나왔으며, 그럴 경우 한국도로공사 등의 손실액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사전 인식을 누가 했고 누가 문제점을 지적했을까? 안 된다는 의견을 누가 과연 개진했었을까? 유료 통행료 면제 속에는 고속도로 통행료마저 내 말 한 마디면 면제될 수 있다는 비민주적 사고가 깊이 내재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제 호주머니 돈이었으면 그리 쉽게 내놓았을까? 무려 184억 원이나 되는 돈을, 남의 돈 가지고 인심 쓰는 웃기는 현상이다. 광복 70주년이라는데, 남북 간의 대화는 완전 단절되어 있고, 한일 간의 외교마찰은 갈수록 심해지고, 민간교류마저 거의 차단되어 버려 그 흔하디 흔한(?) 이산가족상봉도 싹수가 노랗고, 금강산관광도 물 건너갔고, 남북 상호 공연은 고사하고 축구 같은 체육대회마저 전혀 불가능한, 완전 잘린 낙지다리 신세가 되어 있는 상황에서 국민더러 광복 70주년을 함께 기념하며 기뻐하자고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염치없는 정부가 “야, 우리 함께 기뻐하자!”라고 한들, 기뻐할 일이 없는 국민들이 “그래, 우리 함께 기뻐합시다!”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정부의 인위적 기뻐하자는 선동에 함께 기뻐할 일이 없다며 시큰둥하는 국민들을 향해 “이렇게 하면 기뻐할 거지?” 하면서 작위적으로 내세운 게 “14일의 공휴일 및 고속도로 통행료 면제”인데, 전혀 준비되지 않은 채 뜬금없이 갑작스레 공휴일로 지정되다 보니 놀 수 있는 사람은 일부 대기업 직원들과 공무원들뿐이고, 중소기업근로자나 자영업자들은 어느 누구 하나 제대로 쉬지 못하면서 오히려 놀러가는 사람들의 고속도로 통행료를 자신들의 세금으로 대신 내 줘야 한다는 사실 앞에 반발이 장난이 아닌 것이다. 유유상종의 무서운 폐단이다.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만 모이면, 다른 생각이 보이지 않는다. 국무회의에 참석한 국무위원들은 위와 같은 결정이 있으면 항시 쉬는 무리, 혜택을 받는 부류에 속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니 쉬자고 하면 자기들처럼 다들 좋아할 줄 알고, 통행료를 감면해 주면 무조건 좋아할 줄 알고 있는 것이다. 통행료 면제 후폭풍이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감지능력이 전무한 것이다. 국민이라는 낙지의 몸통에서 분리된 낙지다리인지, 아니면 국민이라는 낙지다리에서 분리된 낙지몸통인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며칠 전 발표한 OECD 보고서에 따르면 OECD 회원국을 포함한 조사대상 41개국 가운데 우리나라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가 34% 정도로 중하위권인 26위이고,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사법제도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가 불과 27%에 불과하여 조사대상국 중에서 끝에서 네 번째라고 한다. 어쩌다 양승태 대법원장의 사법부가 이 지경까지 되고 말았을까? 대법관의 임기는 6년이다. 그러다 보니 현재의 대법관은 모두 이명박 정권 및 박근혜 정권에서 임명되었다. 민일영 대법관의 퇴임을 앞두고 이루어진 신임대법관추천위원회에서 누구는 진보적이어서 안 된다는 막말이 나왔고, 양승태 대법원장의 의중은 이렇다라는 말이 공공연히 거론되었다고 한다. 보수, 물론 좋다. 하지만 진보가 결여된 보수는 반드시 썩는다. 반드시 추락한다. 한쪽 추가 무거우면 무너지게 되어 있는 게 세상이치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가 국민이 피부로 느끼는 사법신뢰도 27%인 것이다.  

국민이 믿지 않는 정부, 국민이 신뢰하지 않는 사법부의 모든 행위는 폭력일 뿐이다. 경계에 실패한 군지휘관들이 나와서 북한에 대해 혹독한 대가를 치루도록 하겠다고 호언장담하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이상한 나라, 그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똥 뀐 놈들이 성내는 사회, 다리 잘린 낙지들이 제 처지를 모른 채 살아 있다며 꿈틀거리는 세상, 그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광복 70주년에 통일 대한민국을 꿈꾸지 못한 채, 남북 간의 경색국면만 가중되고 있고, 한일 간의 대립과 반목만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의 가왕 조용필은 평양 정주영체육관에서 헬로와 바운스를 노래하고 싶지 않을까? 중국을 가고, 남미를 가고, 세상 어디 가지 않는 곳이 없는 젊은 아이돌, 한류스타들이 북한에 가서 북한 처녀총각의 넋을 빼놓고, 아줌마 아저씨들을 열광하게 할 수는 없는 것일까? 아, 싸이도 같이 가면 더 좋겠다. 말춤으로 정신을 빼놓게. 평균 연령 79세라는 이산가족은 도대체 언제 북한의 이산가족을 만날 수 있을 것인가? 

꽃이 아닌 태극기를 꽃밭에 심고, 바람에 흔들리지 못하는 태극기를 벽에 고정시켜 놓고, 광복 70주년 기념, 광복 칠십 주년 기념, 광복 치일시입주우녀언기이녀엄 해 보았자, 국민들이 흥이 나겠는가? 어깨춤이 들썩 거리겠는가? 국민 신뢰도 34%의 정부, 국민 신뢰도 27%의 사법부, 아무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신뢰가 땅에 떨어진 사법부의 후유증은 오래 오래 갈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못 느낄 것이다. 주변 사람들은 모두 27%가 어때서, 다 그런 거지 할 것이니까. 북한 김정은은 왜 목함지뢰 같은 정전협정위반행위를 범하는가? 제발 철 좀 들고 평균적 세계인의 문화를 배우기를 바란다. 폭력은 어떤 경우에도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 물론 나쁘게야 할 수 있겠지만, 좋게 바꾸지 못한다. 철 좀 들어라, 아직 그대는 젊지 않은가? 세상을 바꾸는 것은 꾸준한 용기뿐이다. 마음속 두려움을 떨쳐내고, 우리 모두 용기, 용기를 가지자. 다리가 절단된 젊은 군인들의 쾌유를 빈다. 언제쯤 이런 비극이 멈출 것인가......

 

법률저널 2015년 8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