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곽을 찾아서

궁예의 전설이 남아있는 천혜험지의 포천 운악산성(雲岳山城) (2012.10.04)

필그림2 2012. 10. 4. 22:50

궁예의 전설이 남아있는 천혜험지의 포천 운악산성(雲岳山城) (2012.10.04)

 

 

 

10월에 들어 아침,저녁으로 스산한 기운이 상쾌함을 더하며 산과 들에는 형형색색 가을의 색으로 조금씩 변하고 있다.

분명 9월과는 다른 분위기이다. 나이가 조금씩 먹으면서 계절의 변화가 마냥 신기하고 자연의 힘이 위대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낀다. 아무렇게나 걷기도 좋고 가을 풍경들을 감상하며 산행하기도 좋은 계절이다.

 

산속 깊숙이 숨어있어 사람의 발길이 많지 않아 잘 알려지지 않은 허물어진 옛 산성을 찾아가는 길은 더욱 애잔하면서도 경건하고 엄숙하여 이런 가을 풍경과 잘 어울린다. 가을 산행으로 유명한 포천 운악산(雲嶽山 또는 雲岳山,935m)에 잘 알려지지 않은 운악산성(雲岳山城)이 있다. 운악산은 바위산으로 되어있어 험하고 가팔라 운악산성과 같은 피난성을 축성했다.

운악산은 개성 송악산(,488m), 가평 화악산(,1468m), 파주 감악산(,675m), 과천 관악산(,631m)과 함께 경기오악(京畿五)이라 불렀다. 언제부터인가 이 오악의 산 이름에 ‘바위산’을 뜻하는 악()자를 사용하고 있는데 원래는 ‘큰 산’이나 ‘위엄이 있는 산’이란 뜻의 악()자를 사용했었다.

 서울외곽순환도로를 따라 퇴계원IC로 나와 47번 국도를 따라 어수선한 의정부와 남양주의 일부 지역을 지나 포천시 화현면 화현리의 국립운악산자연휴양림에 주차를 하고 등산안내도에 따라 운악산성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는 제1코스로 올라 제2코스로 내려오기로 했다

휴양림으로 올라오던 길을 다시 조금 내려가 매점과 민박집이 있는 곳에서 산길을 따라 산행을 시작한다. 능선을 따라 오르면 폭 20m, 높이 40m 정도의 무지치폭포(무지개폭포)가 나온다. 운악산성은 이 무지치폭포를 가운데 두고 양쪽 능선과 정상능선을 따라 자연 암벽과 함께 부분적으로 석축한 약 3km의 산성이다.

무지치폭포를 우측으로 끼고 30분정도 오르면 북문지로 추정되는 곳의 성벽 일부와 건물지 축대가 확인되고 신선대 아래 치마바위를 지나면 무지치폭포 상부에 위치한 대궐터라고 하는 비교적 넓고 평평한 지대가 나온다. 이곳은 운악산성 내부에서 유일할 정도의 평지이기 때문에 건물지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궐터를 지나 계단을 오르면 정상으로  향하는 좁고 가파른 능선이 이어지는데 따로 성벽을 쌓을 필요가 없어보였다. 이 능선을 따라 주변으로 펼쳐진 기암절벽의 아찔한 풍경과 절경을 만나는 것은 운악산을 찾는 또 다른 이유가 아닐까 싶다. 애기바위를 지나 안부능선에서 운악산 정상까지 50m 남짓 석축흔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망대 및 북문지로 추정되는 구간>

<추정 북문지 주변 약수터 주변 축성흔적>

 

현재 운악산 정상 동봉(東峯)과 서봉(西峯) 두곳에 정상석이 서있는데 포천시에서 먼저 가평군 땅인 동봉에 정상석을 만들어 세웠더니 가평군에서 항의가 들어와 서봉에 똑같은 정상석을 다시 세웠다고 한다. 또한 동봉에는 포천시에서 세운 기존 정상비 옆에 가평군에서 "운악산비로봉(雲嶽山毘盧峯)"이란 비문의 정상석을 더 크게 세워 두 지역에서 운악산을 두고 신경전을 벌이는 것 같아 보였다. 사실 운악산하면 가평군을 더 연상하게 하고 가평군 현리에서 신라고찰 현등사(縣燈寺)를 지나 오르는 길의 산세가 더 멋스럽다고 한다. 하지만 운악산성은 운악산 서쪽인 포천시에서 올라야 볼 수 있다.

운악산 동봉 아래 만경대에 올라 탁트인 북쪽을 바라보면 화악산,명지산,연인산 등 경기도 북부의 명산들이 겹겹이 애워싸고 있다.

 

<운악산 정상 아래 안부능선의 축성 흔적>

<운악산성 남쪽 자연 성벽 구간>

 

다시 운악산 서봉으로 돌아와 서봉에서 동쪽 능선으로 이어지는 운악산성 남쪽 성벽은 가파른 자연 암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밧줄과 사다리, 인공 손잡이를 잡고 내려올 수 있는 험한 곳이다. 암문으로 추정되는 곳을 지나면 산성의 남서쪽 지세를 훤히 파악할 수 있는 면경대(面鏡臺)라는 망대지에 석축 흔적을 만나고 면경대를 지나 남문지로 추정되는 곳에도 문지와 함께 엷은 축성 흔적을 볼 수 있다.

산성은 남문지 아래에 계곡부를 형성하고 있는 운악사  주변에서 무지치폭포 하단부로 이어져 다시 북쪽 능선과 이어지는 형태를 하고 있었다.

운악사 주변 소꼬리폭포와 용굴 주변에 성벽이 20여m 정도 잘 남아있다고 하는데 아쉽지만 시간이 없어 찾아볼 수 가 없었다.

강한 기운을 느낄 정도의 험한 계곡 깊숙한 곳에 위치한 운악사는 비록 좁은 계곡 옆에 만들어진 작은 사찰이지만 하룻밤 묵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조용하고 엄숙한 분위기의 사찰이었다. 운악사가 위치한 계곡 내부는 벌써 가을의 한가운데에 와 있는 것 같았다.

 

<운악산성 남쪽 망대인 면경대 축성 흔적>

<면경대 아래 추정 남문지>

<남문지 성벽 흔적>

 

운악산성에 대한 최초의 기록인 조선 영조34년(1758)에 이세욱(李世郁)등이 편찬한 포천향토지 <견성지(堅城誌)> 산천조에 "운악산은 포천현의 동쪽 25리에 있다. 즉 가평 현등산의 서쪽이 되는 산이다. 산꼭대기에는 옛나라의 궁궐터가 있다" 라고 기록했는데, 여기에서 옛 궁궐터는 지금의 운악산성(궁예성)"을 말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폭포와 기암절벽 등 험한 산악의 지형지세를 이용한 운악산성은 포천 명성산성과 양평 함왕산성, 춘천 삼악산성 등과 유사함을 찾을 수 있다.

후삼국시대 왕건에게 몰리던 궁예가 이곳에 성을 쌓고 저항하다가 패하여 북쪽 명성산으로 퇴각했다는 전설이 남아있기도 하고, 후삼국시대 포천지역의 친 궁예 호족세력이 왕건에 저항했던 요새지로 추측하기도 한다.

1997년 육군사관학교 육군박물관이 작성한 <京畿道 抱川郡 軍事遺蹟 地表調査 報告書>에 의하면 이 산성을 쌓은 주체는 후삼국시대 궁예세력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13세기 몽고 침략때 지역 주민의 피난처로 쌓은 산성으로 추정할 수도 있다.

현재 운악산성은 무속인들이 성돌을 빼내어 움막을 짓는데 많이 사용되었으며, 등산객들의 등산로로 이용되면서 많이 훼손된 상태이다.

운악산의 멋스러운 산세 뿐만 아니라 운악산성의 존재도 제대로 알려 남아있는 지금의 흔적이라도 잘 보존되어 고귀한 역사의 한 장으로 남겨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