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수대를 찾아서

포천지역의 봉수유적(2012.03.25)

필그림2 2012. 3. 28. 15:59

포천지역의 봉수유적(2012.03.25)

 

 

약 1년 6개월 만에 데일리안 최진연 문화재전문기자님과 포천 지역을 답사하게 되었다.

답사일 며칠 전 최진연 기자님께 휴대폰 문자가 왔었다. 경기도 포천지역 봉수유적을 조사할 계획인데 동행할 생각이 있냐고...

본능적으로 25일 일정을 머릿속으로 파악해 기자님께 동행하겠다고 약속을 정했다.

어제 내린 비로 날씨는 꽤 쌀쌀하고 약한 황사가 있었다. 야근 후의 피곤함과 졸린 상태에서 하루 종일 산과 들을 헤매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약속장소인 사당역에서 최기자님을 만나 포천으로 향했다. 첫 답사지역인 포천지역과 인접한 남양주시 진접면에서 미리 약속된 문화유산해설사 한웅 선생님을 만났다. 한웅 선생님은 1년 6개월전 포천 명성산성과 보개산성 답사때 함께하면서 포천지역 길눈이를 해주셨으며 지명유래에 상당한 식견을 가지고 계시는 분이다. 이번에는 아드님과 동행해 포천지역의 역사 유적지를 직접 보여주며 설명해주려는 듯 했다.

포천지역 봉수유적 자료로 1997년 육군사관학교에서 발행한 <포천지역 군사유적 지표조사보고서>를 참고했는데 이후 봉수소재지역이 많이 변해서 지역주민과 관공서 직원들에게 탐문하여 찾을 수 있었다.

 

첫번째로 찾은 유적은 대이산 봉수유적이었다. 행정구역은 남양주시 진접읍인데 포천과 근접해서 포천지역 봉수유적으로 소개되기도 한다.

대이산 봉수는 진접읍 연평3리 마을회관 건너편 팔각정해장국 식당 옆 마을 길을 따라 들어가 야산 아래 농로를 따라 산으로 올라 우측으로 계속 올라 2~3개의 봉우리를 지나 찾을 수 있었다. 주변이 수목으로 가려져 시야 확보가 어렵지만 어렵풋이 보이는 주변 풍광에서 비록 낮은 야산이지만 조망이 확실한 곳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포천지역의 봉수는 해발 200m이하의 낮은 야산에 위치했다. 비록 높은 산은 아니지만 교통의 요지이자 주변의 높은 산에 가려지지 않고 봉화가 전달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대이산 봉수는 동서로 능선이 이어지고 북쪽은 경사가 매우 가파르고 남쪽은 완만한 경사의 봉우리에 위치하여 둘레 30m 정도되는 1개의 연조시설이 희미하게 남아있었다. 남쪽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4단의 석축시설을 해서 흙이 무너지지 않도록 하였으며 봉수군의 숙소가 있었을 것같은 평탄지가 남아있다. 4단의 석축시설이 근래 사방공사의 흔적인지 당시 봉수대 보축 흔적인지는 정밀조사를 해봐야 알 것 같았다. 2층으로 쌓은 석축열의 수법이 일제강점기이후 근대에 나타나는 사선형 쌓기방법이라서 봉수대 설치 당시의 흔적이라고하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을까 싶기도하다.

 

대이산 봉수유적을 찾는데 시간을 많이걸려 시간은 벌써 12시가 넘었다.

점심시간이 다 되었지만 일행은 포천으로 이동해서 넙재봉수를 조사한 후 점심식사를 하기로 했다.

넙재봉수는 포천 <육사생도 6.25참전 기념비>가 있는 낮은 고갯길(넙재) 우측 6부능선에 위치했다. 연대1개소와 연조4개소의 흔적이 남아있었지만 관리 소홀로 훼손이 지속되고 있었다. 우리 일행이 찾은 날에도 지역민들이 칡을 케기위해서 연대 석축을 훼손해가며 열심히 작업(?) 중이었다. 우리는 그들에게 이곳이 봉수유적이며 소중한 문화유산임을 알려주자 작업을 중단하고 자리를 떴다. 이처럼 전국에 산재해 있는 성곽유적이나 봉수유적은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잊혀지고 훼손되어 지고 있음이 매우 안타깝다. 넙재봉수는 방호벽 흔적도 잘 남아있고 동쪽 방호벽 석축사이로 백자와 토기편들이 많이 남아있었다. 방호벽 주변으로 배수로 역할을 했던 것으로 짐작되는 환호흔적과 건물지로 사용되었을 평탄지도 있었다.

대이산 봉수유적을 내려와 포천시내 반월산성 아래 음식점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먹고 포천시내를 지나 신북면 소재지 조금 못미친 기지1리(틀못이마을) 마을입구로 들어가 독산봉수를 찾았다.

독산봉수 또한 입구 찾기가 어려웠다. 겨우 마을 주민으로 부터 위치를 안내받고 찾을 수 있었다. 천관산 등산로 이정표가 설치된 곳에서 부터 산행을 시작했다. 천관산 정상을 향하는 호젓한 등산로 능선길을 따라 20여분 걸어서 독산봉수 유적을 찾을 수 있었다. 능선길 따라 수기의 돌무지와 평탄지, 토석혼축의 축대는 북쪽을 방어하는 차단성의 흔적이 아닐까도 생각해보지만 좀 더 신중할 필요는 있다. 독산봉수 유적은 많이 무너지고 수풀에 덮혀 명확한 유적의 상황을 알 수는 없었지만 넓은 평탄지에 상당히 큰 연대1기와 연조4기가 남북으로 설치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방형의 방호벽도 부분적으로 잘 남아있었다. 봉수유적 북서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주변이 잘 조망되는 곳으로 망대의 역할을 했었을 석축이 남아있다. 남쪽으로 가까이 반월산성이 가로막고 있어 반월산성과 관련된 봉수유적으로 추정해 본다.

이곳 독산봉수는 등산객들이 많은지 한번씩 유적 주변으로 잡목제거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집작할 수 있었다.

내려오는 능선의 오솔길 사이로 자작나무와 참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어 조용히 명상하면서 걷기에 참 좋은 길이었다.

 

독산봉수에서 다시 북쪽으로 올라가 영중면 성동리산성이 있는 성동리삼거리를 우회전하여 야미리 봉수대로 향했다.

야미리 봉수대는 도로 옆 야산의 남북 교통로 상에 위치하고 있어 적의 상황을 쉽게 전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슴농장 앞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언덕같은 야산이 봉수대 유적이었다.

무너진 봉수대 돌무지들을 군부대가 주둔하면서 건물의 기초로 사용했었던지 콘크리트가 많이 섞여 있어 원형을 많이 훼손시켰다. 남쪽 성동리산성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어 성동리산성과 연관된 역할을 했었을 것 같았다. 또한 삼국시대 남과 북에서 이동하는 적의 상황을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위치에 있어 보루의 역할도 했었을 것이다.

연조1기와 방호벽, 건물이 있었을 평탄지 등이 남아있다.

 

야미리 봉수대 유적 답사를 마지막으로 오늘 일정을 마쳤다.

날씨가 꽤 쌀쌀하고 가끔 눈발도 날린 날씨, 아직 포천의 준령고봉에는 눈이 덮혀있었다.

봄이 오는가 싶다가도 이렇게 날씨가 변덕이 심하다.

본격적인 봄을 맞아하며 올해도 즐거운 답사를 계획하며 함께한 최진연기자님과 한웅선생님, 그리고 한웅선생님 아드님께 감사드린다. 

 

 

 

 

1.대이산 봉수(남양주시 진접읍 연평3리)

 

 <대이산 봉수 연조>

 <대이산 봉수 남쪽 4단 석축>

 

 

2. 넙재 봉수(포천시 가산면 우금리 86-1)

 

 <넙재 봉수 연대>

 <넙재 봉수 연조 훼손 흔적>

<넙재 봉수 연조 흔적>

 <넙재 봉수 방호벽 밖 방화호 흔적> 

<넙재 봉수 동쪽 방호벽 출토 백자편과 옹기편>

 

 

3. 독산(독현) 봉수(포천시 신북면 기지1리 틀못이마을)

 

 <독산봉수 연대 및 방호벽>

 <독산 봉수 연대 석축>

 <독산 봉수 연대 석축> 

<독산 봉수 입구 건물지 문주석>

 <독산 봉수 원경>

 

 

4. 미로곡 봉수(포천시 영중면 야미리 금곡동로)

 

 <야미리 봉수 연조 흔적 동->서>

 <야미리 봉수와 남쪽으로 일직선상에 위치한 성동리 산성>

 <야미리 봉수 석축>

<야미리 봉수 방호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