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의 추억

간송미술관 가을전시회(2011.10.16~10.30) - 풍속인물화 대전

필그림2 2011. 10. 8. 22:28

간송미술관 가을전시회(2011.10.16~10.30) - 풍속인물화 대전

 

 

'조선시대 야타족을 보라, 신윤복의 진경풍속화'

 

질펀하면서도 까상까상하다. 조선시대 화가 혜원 신윤복(1758~?)의 풍속화는 인간 내면의 욕망을 숨김없이 드러내면서도, 즐거운 흥취가 감돌게 한다. 어둠 속에 있던 자연의 세계가 동이 트면서 영롱한 이슬을 머금고 새로운 기운을 뿜어내듯이. 그의 그림에는 놀이와 연극,음악이 흐른다. 그것들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의 한 순간을 포착해 영원의 세계에 붙잡아 둔 것이다. 인간 마음 깊은 곳의 근원적 속성을 재미와 감동으로 끄집어낸 그의 그림은 간송미술관가을 전시 <풍속인물화 대전>에서 이야기의 싵타래를 풀어낸다.

 

<연소답청 年少踏靑:젊은이들의 봄나들이,신윤복,지본담채,35.6 X 28.2cm,간송미술관 소장>

 

조선시대 풍속을 그린 <연소답청 年少踏靑>(신윤복,위의 그림)은 한 때 유행했던 요즘 시대의 야타족을 연상시킨다. 분홍 진달래가 활짝 핀 봄에 나들이 풍경을 그린 이 작품에서 양반 자제 세명이 자신들이 데리고 온 세 마리 말 위에 각기 기생 한명씩을 태웠다. 맨 앞의 도령은 마부 역할을 하며,종자처럼 말고삐를 잡고 갓 대신 종자의 모자를 쓰고 있다. 꽁무니에서 그 도령의 갓을 들고 뒤따라오는 종자의 표정은 떨떠름한 우거지상이다.

 

<무녀신무 巫女神舞:무녀의 신춤,신윤복,지본담채,35.6 X 28.2cm,간송미술관 소장>

 

<무녀신무 巫女神舞>(신윤복)는 무당이 굿을 하는 장면이다. 얼핏 보면 그저 굿하는 장면을 담 너머에서 총각이 구경하는가 보다 생각된다. 아 그런데 낮은 돌담을 사이에 두고 집 뜰에 앉아 있는 젊은 여인의 시선이 담너머 총각에게 가 있다. 나이든 여인은 두손을 비비며 정성스레 기도를 하건만, 며느리인지 딸인지 젊은 여인의 마음은 딴 데로 가 있다.

 

<계변가화 溪邊街話:시냇가의 아름다운 이야기,신윤복,지본담채,35.6 X 28.2cm,간송미술관 소장>

 

<계변가화 溪邊街話>는 빨래터를 지나는 도령과 여인 셋이 등장하다. 길가던 도령의 시선은 얼굴을 돌려 한 여인에게 시선이 가 있고, 그 여인은 머리를 따는 척하지만 얼굴은 앞을 보고 있지만, 눈초리는 도령에게 쏠려 있다. 그 옆의 여인은 화가 난 표정으로 방망이로 빨래만 두들기고, 또 그 옆의 할머니는 빨래를 널면서도 표정이 고약하다. 한탄보다는 시샘이 역력하다. 젊음을 돌이킬 수 없는 나이 든 여인의 질투가 더 대단하다.

 

<이부탐춘 이婦耽春:과부가 봄빛을 즐기다,신윤복,지본담채,35.6 X 28.2cm,간송미술관 소장>

 

<이부탐춘 이婦耽春>은 과부가 집뜰에서 봄을 즐기는 장면이다. 꽃이 흐드러진 봄날에 개들이 홀레붙는 장면을 보는 과부의 심정을 묘사하고 있다. 소복을 입고 나무에 걸터앉은 과부의 발끝이 춘정을 이기지 못하는 듯 바깥으로 많이 돌아가 있고, 그 옆에 앉은 소녀는 얼굴이 붉어지며 손이 땀이 찼는지 과부의 치마폭을 그러쥐고 있다. 이 작품은 과부의 수절을 중시하던 그 시대에는 아주 음란한 그림이다. 작가는 정말 사람이 간절히 바라면서도 하지 못하는 것을 그림으로 대리만족을 시켜주고 있다. 부녀자들은 이 그림을 보고 낄낄거렸을 것이다. 최완수 간송미술관 연구실장은 "혜원의 그림은 하나같이 색정적인 것이 아닌 것이 없다. 노골적인 성묘사가 춘화(春畵)라고 한다면, 혜원의 그림은 춘의도(春意圖) 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혜원은 어떻게 당시 양반들의 기생놀이를 통해 인간내면 심리를 잘 포착할 수 있었을까? 아버지 신한평과 함께 부자가 화원이었던 혜원은 젊은 시절 양반 자제들과 신나게 놀 기회가 많았고, 상류층 자제들도 그림 재주와 인물이 뛰어난 혜원과 어울리기를 좋아했다고 한다.혜원 그림의 색채는 색채감이 강하여 산뜻하다. 그것은 좋은 안료를 썼기 때문이다. 상류층에게 인기가 높았던 혜원은 그들의 후원을 받으며 최고의 안료를 쓸 수 있었던 것이다. 이번 전시에는 <미인도> <월하정인>, <춘색만원>등 신윤복의 작품만도 16점에 이른다.

 

<춘색만원 春色滿圓:봄빛이 전원에 가득하다,신윤복,지본담채,35.6 X 28.2cm,간송미술관 소장>

 

혜원의 <춘색만원 春色滿圓>은 조선화에 서양식 음영법이 이미 도입되었음을 알 수 있다. 술이 거나하게 취해 붉어진 사내의 얼굴과 부끄러워 발그레진 여인의 뺨의 묘사는 서양식 음영법의 표현이다. 최완수 연구실장은 "혜원 신윤복의 그림시기는 서양음영법이 조선화에 이미 도입된 것으로 세계적 기업의 융합이라고 볼 수 있다. 문화융성기에는 세계 모든 문화의 정수를 얻을 수 있는 시기이다. 유라시아 대륙의 맨끝에 자리한 우리나라는 세계문화의 종착지이자 종결처분되는 곳이다. 추사 김정희 혜원 신윤복, 단원 김홍도의 진경시대는 초상화가 가장 발전된 시기이다"고 평가했다.

<자료출처 : 뉴시스 2011.10.08>

 

 

조선시대 풍속인물화의 변천 - 간송미술관 가을전시 '풍속인물화대전'

 

매년 봄ㆍ가을에만 문을 여는 성북동 간송미술관이 가을 정기전으로 오는 16일부터 30일까지 조선시대 풍속화와 인물화의 변천을 살펴보는 '풍속인물화대전'을 연다.
안견(1418-?)에서부터 이당 김은호(1892-1979)에 이르기까지 조선왕조가 배출한 52명의 화가가 그린 인물풍속화 100여 점을 한자리에 모았다.
한 시대의 문화는 그 시대를 관통하는 이념에 의해 성격이 결정되는데 이런 현상은 조선왕조 회화사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남중국에서 발원한 주자성리학 이념을 받아들인 조선 전기에는 중국식 화풍을 모방한 작품들이 많아 인물들의 의복뿐 아니라 그림 속 소도 남중국에만 있던 물소의 모습으로 등장하곤 했다.

그러다 율곡 이이(1536-1584)에 의해 주자성리학이 조선성리학 이념으로 발전하면서 문화 전반에서 조선 고유의 색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후 겸재 정선(1676-1759)이 조선성리학의 이념을 토대로 우리의 자연과 사회를 우리만의 개성 있는 화법으로 형상화한 진경풍속 화풍을 창안해 조선 풍속화가 꽃을 피웠다.
겸재에 이르러 비로소 조선 풍속화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조선 의복을 입기 시작했고 당시 백성의 삶이 그림에 반영됐다.
나무꾼이 땔감을 운반할 때 일상적으로 사용했던 지게가 그림에 등장한 것도 겸재의 '어초문답(漁樵問答)'이라는 작품에서였다.
후세대인 관아재 조영석(1686-1761) 등이 풍속화에 주력하며 조선 풍속화풍의 기틀을 닦았다.
그는 시골집 여자가 하는 일을 뜻하는 '촌가여행(村家女行)'에서 단촐한 초가집 부엌 뒤에서 미투리를 신고 절구질을 하는 당시 조선 하층민 여인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사대부 화가들에 의해 시작된 풍속화가 단원 김홍도(1745-1806), 긍재 김득신(1754-1822), 혜원 신윤복(1758-?) 등 화원 화가로까지 확산하면서 조선의 풍속 화풍은 그 절정에 이르렀다.
신윤복의 부친 신한평의 '자모육아(慈母育兒)'에는 막내아들을 품에 안고 젖을 물린 어머니와 너덧 살쯤 된 또 다른 아들, 복주머니를 만지작거리며 앉아있는 딸의 모습이 담겼다.
신한평이 2남1녀를 뒀다는 이유로 당시 민가의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었을 것같은 장면을 묘사한 이 그림이 신한평의 가족을 그린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단원 김홍도는 소를 타고 나뭇짐을 지고 가는 순박한 시골 소년의 모습을 묘사한 '기우부신(騎牛負薪)'이나 어느 봄날 젊은 선비가 말 위에서 꾀꼬리 소리를 감상하는 '마상청앵(馬上聽鶯)' 등을 통해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인물풍속화에 뛰어난 기량을 보였던 신윤복은 '미인도' '춘색만원' '소년전홍' '연소답청' 등에서 당시 젊은 양반 자제들의 풍류 문화를 노골적으로 묘사했다.
그러나 조선 말기로 접어들면서 무분별하게 밀려든 청대 말기의 인물화풍의 유행으로 100여 년 넘게 화려하게 꽃피었던 조선풍속화도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 합뉴스 박민영 기자 -

 

<자료출처 : 얀합뉴스 2011.10.07>